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Jul 24. 2020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글을 시작하며

 처음 우리 집을 찾은 날을 기억한다. 몇 주 동안이나 같은 동네서 비슷비슷한 집을 봤다. 이 동네는 한 인테리어 가게에서 전체 동네의 인테리어를 했는지 모든 집에 같은 색의 몰딩, 같은 바닥, 같은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집이 그 집 같고, 그 집은 저 집 같고 도무지 우리가 집을 구할 수는 있을까, 마음속이 어두워져만 가는 상황에서 부동산 사장님이 한마디.


“반전세집 보실래요?”


  얄팍한 두께의 지갑을 쥐고선 그나마 괜찮은 전세를 구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월세는 처음부터 배재했지만, 한 집이라도 더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좋다 말씀드리고 찾아갔다. 들어가는 입구엔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고, 동네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위치라 조용하기는 하겠구나 하는 생각. 


'띵동' 


벨을 누르고 집의 현관문이 열렸을 때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우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돌아다니며 봤던 어떤 집들보다 밝았다. 그 집은 열여덟 평밖에 안됐지만,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었고, 짐도 어마어마해 현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보였지만, 

'여기가 우리 집이다' 

이 집과 처음 만나는 순간 우린 알았다. 


 그렇게 이 집과 만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이 삼십 중반이 넘을 때까지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꼴랑 몇 천뿐인 남자와 여자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얻고, 같은 회사를 다니며 출근과 퇴근을 함께하고, 주일이면 근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결혼 이 년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삶의 속도를 정하고 다시 한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같은 속도로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십 년은 살겠지 생각한 집에서 겨우 오 년을 지냈을 뿐인데, 기분은 오십 년을 더 보낸 사람마냥 애틋한 기분은 뭘까. 첫 집이라 그런지 마음도 많이 쏟고 구석구석 안 닿은 손길 없이 계속 매만졌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사를 가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을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난 이사를 간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전세자금 대출에 ‘운 좋게’ 당첨이 되었고, 그 대출을 받으면 현재 우리가 내고 있는 월세보다 적은 금액으로 좀 더 크고, 좀 더 깨끗한 집에서 지낼 수 있다. ‘크고 좋은 집’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깨끗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사실 더 크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6개짜리 생수통을 들고 4층 계단을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으니까.


 결혼 5년 차 부부가 새 집을 찾는 과정을 글로 남겨볼까 한다.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내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도 괜찮다. 십 년 후에 다시 이 글을 읽는다면, 또 모르지. 그땐 뭔가 발견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