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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Jul 30. 2020

내가 살고 싶은 집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면 말이지, 결혼하기 전부터 쨍알쨍알 말이 많았다. 큰 방은 어떻게 꾸미고 싶고 작은 방은 이랬으면 좋겠고, 부엌은 이렇고 저렇고 꿈도 많고 생각도 많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부족한 예산을 메꾸기 위해 대출이라는 좋은 제도를 활용했지만 욕심을 다 채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20년 된 오래된 빌라 꼭대기층으로 첫 신혼집을 얻으며 남들 인테리어 하는 것처럼 조명도 바꾸고 벽지도 발랐으면 좋았을 테지만, 집주인 아저씨는 갈색 몰딩 색깔을 바꿨으면 한다는 우리 의견을 안된다는 한마디로 자르시고, 몰딩은 건들지 말라며 엄포를 놓으셨다. 벽지 정도는 바꿔주시겠다고 하셔서 그럼 우리가 마음에 드는 벽지를 바를 터이니 생각하신 금액만 저희에게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조차 어려웠다.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알아서 예쁘게 바꾸겠다는데, 우리의 안목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인지 벽지도 가장 저렴한 종이 벽지를 발라주시곤 끝. 몰딩 색깔도 벽지도 고를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한 인테리어 관계자 호군은 집에 그 어떤 인테리어도 손대지 않겠다 다짐해버리고... 마침내 우리 집은 브랜드 가구 쇼룸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화장실은 흔쾌히? 고치라고 해주셔서 건식 화장실로 나름 큰돈을 들여 고쳤다. 그래서일까. 난 우리 집에서 화장실이 가장 애틋하다.


 적은 예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인테리어라곤 욕실 개조밖에 없었던 처음 집과는 달리 이사 가는 집에는 인테리어에 조금 더 신경을 써보겠다는 호군의 말을 믿고 두 번째 집은 좀 더 좋은 환경이 되길 바라며 몇 가지 조건들을 생각했다. 위치나 주변 환경, 시설과 내부 인테리어 등 우리가 현재 이 집에서 살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필요한 조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집을 찾으려면 우리의 우선순위가 우선 정해져야 한다.


 첫째, 위치.

 동네를 선정하는 게 가장 처음이다. 우리는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와 가까웠으면 좋겠고, 내가 다니는 병원과 30분 정도의 거리로 가까워야 한다. 오빠의 회사와도 가깝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오빠 회사와 병원이 서울의 끝과 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조건에 맞추기로 했다. (아프면 금방 뛰어가야 하니까) 경기도시공사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서울은 탈락. 경기도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오빠 회사 근처라면 부천이나 고양시일 테고, 병원 근처라면 성남이나 하남 정도가 베스트. 교회에서 멀어지면 자연히 마음도 멀어지기에 교회 근처 빌라가 일 순위가 되었다. 


 둘째는 엘리베이터 유무. 

 빌라 4층에 살고 있는 우린 처음엔 괜찮았다. 옆집에 사는 주인아저씨도 걸어 다니시는걸, 그렇게 나이 먹어서도 다닐 수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호기롭게 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베이터 있는 집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특히 6개들이 물을 들고 나를 때. 배달시키면 되잖아,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도 힘든 일을 택배 아저씨라고 힘들지 않으실까. 정수기를 설치하면 되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물을 많이 먹진 않는다. 2리터 6개짜리 물이 일주일 넘게 소비가 되지 않으니까 정수기를 설치하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 설치하고 많이 먹으라고? 설치해봤자 많이 안 먹을 게 뻔한데, 왜 굳이? 걷든 달리든 운동을 하는 건 운동을 하는 거고, 집에 오르락내리락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호군과 살이 쪄서 그런지 자꾸 계단 오르는 게 힘들어지는 갱양은 엘리베이터 있는 집을 간절히 원하고 있어 꼭 엘베 있는 집으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셋째는 창문을 열었을 때 초록이 보일 것.

가로수도 상관없고 공원도 상관없으니 초록의 기운이 느껴지는 집이길 바랐다. 지금 집은 초록이 과한 집이다. 집 한가운데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어 창 밖으로 느껴지는 여름 초록의 기운과 겨울 하양의 기운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집에 액자를 걸지 않아도 화질 좋은 티브이를 설치하지 않아도 창 밖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은 집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한다. 새끼 길냥이들이 버려진 공터에서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나 어른 냥이가 낮은 지붕 위에서 여유롭게 볕을 쬐며 일광욕을 즐기거나 파랗고 긴 꼬리를 가진 우아한 모습의 새들이 꽥꽥 짖어대는 반전의 모습까지 다양한 일상의 풍경들을 집 안에서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 초록이 보이는 공간에서 다시 그런 일상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그리고 나머지 소소한 바람들. 방이 세 개는 되었으면 좋겠다, 욕조가 있었으면 좋겠다, 부엌이 좀 크거나 활용도 있게 공간이 구성되었으면 좋겠다 등등.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조건들이라 여러 가지 희망사항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과연 우리의 조건에 합당한 집을 찾을 수 있을는지, 이 동네에서 그런 집을 찾는 건 무리인지,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거나 더 먼 동네로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실제 부동산에 가서 매물을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우리가 꿈꾸는 어떤 집. 


 호군과 함께 우리가 살 집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조건들을 나열할수록 점점 행복해졌다. 마치 여행 가기 전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이것저것 상상하며 다양한 꿈을 꾸는 것처럼 우리도 이사 가기 전, 그리고 현실의 집들과 부딪히기 전 마음껏 꿈꾸고 욕심껏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열심히 찾아보자, 열심히 기도하자, 간절히 바라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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