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뭇 다른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사실, 유부의 산책은 쉽지 않다. 몸은 작지만 힘이 장사인지라 산책할 때마다 나를 산으로 강으로 끌고 다닌다. 짧은 시간 빠른 체력 소모를 위해 난 기꺼이 끌려가 주는 편. (굉장히 잘 못된 판단이었다고 지금은 반성중입니다) 야트막한 언덕도 순식간에 오르고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 강 구경도 곧잘 하는 유부는 반려견과 유유히 산책을 즐기는 다른 보호자님들에게 최악의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뒤늦게 내가 너무 애를 막(?) 키운 걸 알고 산책 방법을 교정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남들 한 달 걸릴 산책 교육을 난 일 년이 넘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삐삐의 산책은? 역시, 쉽지 않다. 삐삐는 유부와 정반대의 의미로 쉽지 않다. 산책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삐삐는 산책을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에 멈춰 앉아버린다. 산책을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쳤다는 듯 주저앉아 나만 빤-히 바라본다. 다른 강아지들에게 관심도 없고 마킹도 끙아도 그닥 하려 하지 않는다. 산책 나가는 길은 머뭇거리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은 누구보다 영민하게 찾아내 빠르게 이동한다. 진행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는 삐삐다.
둘의 이런 성향을 알지 못하고 나간 첫 산책은 대실패. 강아지 산책으로 사람 몸이 찢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유부와 가기 싫다고 버티는 삐삐. 오른쪽으로 가겠다는 유부와 유부를 피해 왼쪽으로 가겠다는 삐삐. 줄이 꼬이고 몸이 꼬이고 한쪽은 있는 힘을 다해 당기고 다른 한쪽은 자리 잡고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망. 두 손으로 유부를 잡아당기고 싶지만 유부가 끌려와 삐삐에게 달려드면 삐삐는 다시 반대쪽으로 피해 다시 줄이 꼬이고 몸이 꼬인다. 망할 강아지들.
사료를 부어준다. 유부는 무엇을 주든, 어떤 사료든 가리지 않고 1분 컷. 하지만 삐삐는 배가 죽을 만큼 고프지 않은 한 먹지 않는다. 동시에 사료를 부어주면 유부는 달려들고 삐삐는 본척만척. 유부는 다 먹고 눈치를 보다 삐삐의 사료까지 먹어버린다. 안 되겠다 싶어 삐삐가 먹길 기다리다가 결국 먹지 않으면 식탁 위로 사료를 치우는데, 어라? 저것도 내가 원래 먹던 건데? 삐삐의 사료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유부는 전략을 바꾼다. 이젠 사료를 부어주면 삐삐의 밥그릇으로 먼저 달려가 후다닥 먹어치우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기 몫의 사료를 먹는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굶은 삐삐가 이번엔 사료를 먹으려고 했나부다. 삐삐 밥그릇으로 유부가 달려들자 그르렁거리며 왕- 하고 짖는다. 깜짝 놀라 주춤하는 유부. 이 쉐키, 또 삐삐 밥 뺏아 먹으려고? 삐삐의 편안한 식사시간 확보를 위해 삐삐와 밥그릇을 식탁 위로 올려준다. 여기까지는 못 올라오겠지. 다 먹지 않으면 유부가 남은 사료를 먹어치울 것을 안다는 듯 전투적으로 사료에 달려드는 삐삐. 이그... 그러게 평소에 조금이라도 먹어두지 그랬어. 체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다른 두 강아지가 한 곳을 바라볼 때가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을 꺼낼 때, 손에 칼을 쥐고 도마에서 뭔가를 썰기 시작할 때,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릴 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누나를 향해 몸을 뉘이고 꾸벅꾸벅 졸린 눈을 치켜뜨려 노력할 때, 두 마리의 강아지는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지켜본다. 어디든 가지 말라는 듯, 무엇이든 나눠 먹자는 듯, 언제나 나의 뒤를 쫓는 둘.
그래서 사람들이 강아지와 가족이 되나부다. 짧게 머물다 갈지언정 함께해주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를 바라봐주는 너희들로 인해 나도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