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야, 그르지마아아아아-
동네 사는 친구가 이사를 가는데- 가기 전에 강아지를 며칠 맡아달라 부탁했다. 정리 안된 집에 애와 개가 함께 있으면 집 정리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정리가 끝나는 대로 데리러 오겠노라며. 우리 집에도 가끔 놀러 오기도 했고 견생 몇 개월 차 유부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듯 콧웃음 치는 다섯 살 삐삐였기에 흔쾌히 그러라 그랬다.
그렇게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엄마랑 동생이 함께 있었는데, 홀로 남겨진 삐삐는 약간 예민해졌다. 유부가 중성화 수술을 하긴 했지만 수컷이기도 하고, 몸집도 삐삐보다 크다. 제철 생선마냥 집에서도 밖에서도 팔딱이길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유부는 삐삐를 보자마자 드릉드릉 꼬리를 흔들며 놀자고 시동을 거는데, 삐삐는 귀찮기만 할 뿐. 그르렁거리며 꺼지라고 해보지만 유부가 꺼질 리가 있나, 잠시 깨깽거리다가 슬슬 삐삐 눈치를 보며 기회를 노린다.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오겠지, 곧 올 거야 생각하며 문 앞으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아 문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삐삐야, 엄마 오려면 멀었어. ㅠ
기다리는 엄마는 오질 않고 유부는 호시탐탐 삐삐와 놀 기회만 노리고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삐삐 생리가 시작되었다. 바닥에 피가 한두 방울 떨어져 있는 걸보고 뭔가 싶었는데, 삐삐 엉덩이에도 피가 묻은 걸 보고 생리인걸 알았다. 삐삐는 엄마 바라기인데- 안쓰러운 마음에 안아서 쓰담쓰담, 괜찮다며 위로해주었다. 내 손길에 슬며시 배 위에서 자리를 잡는 삐삐. 소파에 누워 삐삐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 유부와 눈이 마주치자 삐삐에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악!!!!!!!!!!
하필 삐삐가 내 배 위로 자리를 잡았을 때 벌어진 전쟁이라 나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중간에서 비명만 지르고- 이 모습을 본 호군은 꺼이꺼이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 감히 우리 눈나 배에서 눈나와 좋은 시간을 보낸다고?!!! 용서할 수 엄써!!!
- 내가 누구 배에 있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나이도 어린게!!!
한 성격하고 극도로 예민해진 삐삐도 이 싸움에서 질 생각이 없고, 나에 대해 한 번도 적극적인 애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유부도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듯 죽기 살기로 덤벼대니... 결국 나만 죽어날 수밖에. 삐삐는 약간 입질이 있는 아이인지라 내가 잘 못 잡았다가 물릴 수가 있어서 호군에게 유부 잡으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 으아악, 살려줘!!! 지금 뭐 하는 거야!!! 유부 잡아아아앗!!!!!
5-6kg 육박하는 개들이 내 배 위에 벌인 전쟁에서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장이 파열된 건 아닌지 배를 점검한 뒤 살아있다는 걸 알고 유부와 삐삐를 앉혀놓고 교육 시작.
- 누가, 우리 집에서 폭력을 써!!! 유부 누가 그러래!!!!
- 삐삐, 너도 언니 배 위에서 그렇게 날뛰면, 언니 장 터져 안 터져??????
싸울 거면 내려가서 싸워야지!
쒸익쒸익, 반성할 줄 모르는 두 멍멍이들.
앞으로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