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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Nov 15. 2021

내 구겨진 마음이여-

오늘의 청소 - 감정

 산책을 하다가도, 친구를 만나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도 문득 과거의 어떤 사건들이 머릿속을 스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 당시 서운했었던 어떤 일, 누군가, 그런 상황들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 그게 대단히 충격적이거나 억울할만한 일들은 아니다. 유부와 산책 중 지나가는 사람이 유부를 보며 손가락질하며 쓸데없는 소릴했다던지, 경조사에서 만난 먼 친적이 의례 묻는 질문인데 그날따라 그 질문이 신경에 거슬렸다던지 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들이 가끔 이렇게 머릿속을 스친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내 고요한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었는데,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이렇게 대꾸했었어야 해- 도대체 난 바보처럼 왜 그런 얘길 듣고 가만히 있었을까- 자책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말을 한 상대방도 원망스럽고 제대로 답하지 못한 나도 답답하다. 그 장면, 분위기, 오갔던 말들이 그렇게 떠오르면 난 자책을 시작한다. 갑자기? 몇 년 전일인데? 


 네, 갑자기, 몇 년 전 일이어도 전 지금 그 일이 몹시 후회가 됩니다.


 처음엔 그냥 억울해서 생각이 나는 거겠거니, 했다. 그때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했으면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그 생각이 날까, 그 감정이 잊히질 않을까. 그렇게 날 위로하며 마음껏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고 상대방에게 모든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그 생각에 골몰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머릿속에서지만 내가 했어야 할 말을 쏟아붓고 나면, 항변할 수 없는 상대방은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다. 그렇게 난 내 머릿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벌을 내렸다. 그때 받았어야 할 벌을 지금이라도 받으라는 듯.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얼마 전부터다. 이미 난 충분한 벌을 내렸고 속이 시원해질 만큼 시원해졌는데도 여전히 여러 사건들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하루 이틀 지나서 다시 떠올린 것도 아니고 몇 달이 지났는데도 다시 생각이 났다. 어? 왜 자꾸 생각이 나지? 좋은 일도 아니고 다시 떠올려봤자 나에게 상처만 남는 일들인데 왜 끊임없이 떠오르지? 그렇게 불현듯 떠올리는 생각이 불편했고, 깊이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나 생각하기 싫다고 하는 사건일수록 더 머릿속에 남아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자꾸 누군가가 내게 먹기 싫은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는 듯한 불쾌함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은유 작가님의 <나는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걸. 주일마다 교회에서 용서하세요, 사랑하세요를 끊임없이 들었건만 그 말들이 내 속으로 흘러 들어오지는 않았었나 보다. 맞아,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끊임없이 맞장구를 쳤지만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순간 읽던 책에서 '나를 용서하듯 남을 용서하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이거였구나- 한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내가 겪은 그 모든 사건에서 나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상대방을 향해 끊임없이 괴롭히고 벌을 주었는데, 그 벌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다음부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머리를 흔든다. 그리고 되뇐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누구나 다 실수한다, 용서한다. 내 손으로 내 양 어깨를 감싸고 나를 토닥이며 반복해서 말해준다. 괜찮아, 용서해, 그럴 수 있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길을 걷다 미친 사람마냥 가만히 서서 그렇게 말하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시선에 금세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약간의 시선을 견디고 나면 머릿속의 상념들은 사라진다. 현실의 고통이 더 큰 법이니까.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답답했던 나를 용서한다. 그런 말을 한 너도 그럴 수 있다. 용서한다. 사람이니까 이런 실수는 또 저지를 수도 있다. 괜찮다.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면 진짜 내가 나를 용서했는지 상대를 용서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열 번 떠올리던 일들을 다섯 번으로 줄이고 세 번으로 줄이고 두 번으로 줄여보자. 언젠가 내 기억 속에 영영 사라지는 날도 있겠지. 혹시 사라지지 않으면 어떤가. 그것마저 그럴 수 있다 생각하자. 용서하자. 그럴 수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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