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우리 집은 꽤 좋다. (물론 내 기준) 18평, 보증금 1억에 월세 30만 원, 관리비 4만 원.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5분 정도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있어 한정거장만 가면 노선이 2개 지나는 지하철 역이 나온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 화장실은 이사오며 깔끔하게 수리를 마쳤다. 베란다가 넓어 이불을 널기에도 좋다. 거실 중앙에 큰 창이 있어 볕이 잘 들고, 화장실은 들어올 때 직접 수리를 해 욕조도 있고, 깔끔하게 관리했다. 주방도 손대지 않은 것에 비해 나름 쓸만하고, 베란다도 널찍해 활용도가 높은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 가려는 이유는 반전세라는 것과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해도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운동하는 셈 치고 다니면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달에 삼십만 원씩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모이는 돈도 아니고, 그저 나가는 돈인 월세. 은행빚처럼 갚을 수 있는 돈도 아닌지라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집에서 지내면 계속 계속 빠져나가는 돈.
혹시 주인아저씨가 우리한테 이 집을 전세로 돌려줄 생각은 없으실까? 아저씨가 이 집을 전세로 돌려준다고 하면 오빠는 어때? 계속해서 이 집에 살 생각은 있어? 묻자, 괜찮지.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지. 그렇게 된다고 하면 이 집 다시 깨끗하게 수리해서 살아도 괜찮겠다, 꼴 보기 싫은 몰딩만 정리해도 집이 훨씬 보기 좋을 텐데. 그럼 부동산에 집 내놓기 전에 아저씨께 전세로 돌려주실 생각은 없는지 여쭤보고 내놔도 되겠다, 했는데 오빠의 부정적인 대답. 월세로 생활비 하실 텐데, 전세로 돌려주실까? 모르겠고, 물어나 봐~
우리랑 사이도 좋았고, 월세 밀린 적도 없고 우수한 세입자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 협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닌 정말 건물 관리를 알뜰하게 하셔서 주차난인 동네에서 편히 주차할 수 있는 집 중 하나이고, 해마다 계절마다 건물을 계속해서 보수하신다. 또 계절마다 직접 가꾸시는 텃밭에서 감자며 고추, 상추 같은 것들을 나눠주시곤 했다. 손이 크셔서 한번 주실 때마다 한가득. 상추를 보따리로 주시는 날은 그 날부터 일주일간 우리는 상추 파티. 매번 받을 수만은 없어서 우리도 직접 농장에서 딴 블루베리를 드리거나 명절이면 조그마한 선물을 드리곤 했다. 이렇게 사이좋은 이웃이니, 전세도 한번...!!!
그리고 그날 저녁 오빠가 집에 들어오며 아버님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며 들어온다. 정말? 어떻게 됐어? 뭐라고 하시는데? 아니… 내가 우리 경기도시공사 신혼부부 전세대출됐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러니까? 옆에 계신 어머님께서 당장, 어머, 그럼 이사 가겠네? 하시는 거야. 아… 그래서 시도도 하지 못하고 아… 생각 좀 해보고요 하고 올라왔다며. 아.. 우리 당연히 이사 가는 걸로 알고 계시네? 그래도... 말이나 좀 해보지 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둘 다 마음속으론 이사 가고 싶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엘리베이터가 그리 좋더냐!!)
지난번 부동산 아저씨의 ‘조언’에 따르면 계약기간 만료 전에 이사 나가는 경우라 우리 집 복비는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집이 빠지지 않을 경우 계약날짜까지 보증금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월세까지 계속해서 부담해야 한다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사실인지 검색을 해봤더니, 법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지만 통상 그렇게들 한다고 적혀는 있다. 계약은 내년 2월까지인데, 5개월 정도 일찍 나가는 상황이라 혹시 그전에 집이 빠지지 않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돈은 150만 원. 적지 않다. 어떻게든 빨리 집을 내놓아 나가게 하는 일이 관건.
전세로 돌릴 수 없을 경우 주인아저씨께 이사 간다고 빨리 말씀드리고 집 정리를 시작하자고 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집은 아니더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이 보기는 더 좋으니까. 그리고 혹시 우리가 집을 내놓게 되면 다음에 올 세입자에게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임대하실 건지도 여쭤보라 일러두었다. 월세를 올리거나 내리실 수도 있고, 보증금이 달라지거나 관리비가 달라질 수도 있는 부분이니 미리 체크해 두는 편이 낫다. 여차하면 우리가 우리 집을 사진으로 찍어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같은 네이버 카페에 올릴 수도 있으니 정보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이제, 진짜. 집을 구하고 이사 준비를 서두르자. 눈 앞으로 이사라는 미션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