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부부의 이사
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자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식탁 위, 조리대 위, 책상 위 등등… 내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이 하나같이 거추장스럽고 어지럽게만 느껴졌다.
물건이 많다.
나름 정리하며 산다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수납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집을 판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둘러보니 (사실 판매는 아니지만) 온갖 물건들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넷플릭스에서 초반에 재미있게 본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떠올렸다. 5가지 항목으로 나눈 뒤, 품목별로 모든 물건을 꺼내놓고 그 물건을 만졌을 때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이별을 택하는 곤도 마리에 식 정리법.
옷부터였던가? 옷장 안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낼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막막해졌다. 마음먹고 며칠에 걸쳐 옷만 정리하기엔 스스로 감당이 안될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데 정리하는 일이 너무나 두렵다. 하지만 지금 난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누구의 방식을 따르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자 싶었다.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을 먼저 버렸다.
쓰레기통을 비웠다. 안방, 화장실, 거실 등등. 각각의 공간에 있는 크고 작은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들을 한 곳으로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상 위와 선반 등을 보며 쓰레기인데 안 버리고 있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봉투 속으로 집어넣었다. 몇 달 전에 받은 감기약 봉투, 주정차 위반으로 날아온 과태료 부과 통지서(…), 빈 로션 박스, 이런저런 영수증 뭉치 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왠지 버리기 아까워 선반에 올려둔 알코올 스왑은 꺼내서 휴대폰을 한번 닦고 집에 있는 문고리들을 닦고 버렸다. 그렇게 쓰레기봉투 하나를 채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여름이라 가능하면 음식물 쓰레기는 집에 쌓아두지 않으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적은 경우 봉투가 괜히 아까워 베란다에 꽁꽁 묶어 내놓았었다. 부엌으로 가지고 들어와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꺼냈다. 곰팡이가 피어있는 청, 흐물흐물해진 야채들을 꺼내 빈 음식물 쓰레기봉투의 공간을 채웠다. 딱 봉투 한 개 정도의 분량만 버리자. 더 이상 버리면 내가 먼저 지치고 만다. 버리는 것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있다.
쓰레기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고 나서 집 안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봉투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빌라는 재활용 쓰레기는 건물에서 분류해 버려 주시고, 소각용 쓰레기는 건물 밖 지정장소에 내놓으면 수거차가 수거해간다. 내가 오늘 채운 쓰레기봉투 두 개 분량을 밖에 내어놓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그다음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다.
다시 새로운 봉투를 채우자
목표가 분명해 지자 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용하지도 않고,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당연히 판매는 더 어려운 집 안 구석구석의 잡동사니들을 모으는 일. 내 방식은 집 안의 물건을 분류해,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가르고, 사용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필요한 것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것이다. 가능하면 하루에 한 봉지씩, 하루에 한 봉지가 어려울 경우 이틀이나 삼일에 걸쳐 천천히.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면 내가 먼저 지치고 만다.
내 방식대로 천천히, 조금씩 비워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