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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11. 2020

집을 찾자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9월 중순 이사라고 하면 도무지 집을 안 보여 주시는 거 같아 8월에서 9월 사이라고 하고 부동산을 다니자! 결심하고 다시 부동산 투어를 계획했다. 남의 집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양말도 깨끗한 녀석으로 골라 신고, 신고 벗기 편한 운동화를 선택했다. 평소 입고 다니는 늘어진 티셔츠와 얼룩이 있는 바지는 신뢰감을 떨어뜨리니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으로, 누구든지 우리를 보면 세입자로 받아들이고 싶도록 신혼부부의 모습을 연출! 얼마 만에 주말에 이렇게 단정한 모습인 거야;;;


 타깃으로 생각하는 부동산은 평소 오빠가 온라인 부동산 페이지를 탐독하며 매물이 많다고 한 A 부동산과 우리가 지금 집을 계약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던 B 부동산 이렇게 두 곳이다. 어차피 동네에서 이동하는 거니까 걸어 다닐까 하다 7월의 햇살이 너무 뜨거워 가깝지만 차량 이동을 선택. 걸어서 5분 거리 부동산도 1분 만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 


 A 부동산 앞으로 슬슬 걸어가는데 열린 문 사이로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소파에 누워 탁자에 발 뻗고 누워계신다. 으음? 하고 오빠를 바라보니 오빠가 단호히 말한다. 패스. 소파에 앉아있을 수도 있고, 누워있을 수도 있지만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는 시간에 문을 다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데 그런 모습을 굳이 보인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네에서 제일 유능하고 실력 좋은 분이라고 해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요소가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 이건 지난번 첫 번째 투어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조언’ 해 주시려는 ‘어른’들이 꽤 많으니까.


 바로 방향으로 바꿔 B 부동산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한 커플이 상담 중이다. 테이블에서 수다 중이신 사장님께서 우리를 보곤 뭐 보러 왔냐 물으신다. 우리가 찾는 몇몇 조건들을 말하자 동네에 그런 집 없어~ 하다가 곰곰이 생각하시곤 있다 있어 몇 번지 거기 있네! 하고 활짝 웃으신다. 바로 전화하시는 사장님. 그렇게 처음, 남의 집 문턱을, 넘게 되었다. 



 

조심스레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나는 괜히 실망스러웠다. 집이 조금 더 커졌을 뿐 이 동네 인테리어는 황토색 바닥에 갈색 몰딩으로 정말 처음 집을 구하러 다녔던 5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호군 표정은 생각보다 괜찮다. 부동산 사장님께 보이는 리액션도 나쁘지 않다. 나중에 나와 호군에게 슬쩍 물으니 처음 우리가 집 보러 다닐 때보다 훨씬 좋은 집들이라며, 구조도 나오고 조금 수리해서 살면 훨씬 좋을 거라고 한다. 수리해서 살 생각도 하는구나, 또 그렇게 생각하면 집의 현재 상태보다 집의 구조나 주변 환경, 주차, 조건들이 더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수 있겠다.


 B 부동산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있는 집은 없다고 하여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남기고 나왔다. 처음 계획했던 부동산은 다 돌았는데, 다른데도 그냥 무작정 가볼까 싶은 마음으로 동네 부동산 두 곳 옆 동네 부동산 세 곳을 더 돌았다. 가는 곳마다 우리를 대하는 부동산 사장님(혹은 실장님)의 스타일도 다르고, 태도도 달랐다. 옆에서 계속된 계약으로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뿜어내는 부동산이 있는 반면 우리가 보는 직방 앱을 똑같이 열어 매물을 검색하는 분도 계셨다. 부동산을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만나는 경우만큼, 우리와 찰떡궁합이 되어주실 부동산 사장님을 만나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드라마에서 보는 부동산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적극적이고 우리 고민에 귀 기울여 주시던데. 드라마 속의 이야기인가. 우리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부동산을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친절하고 적극적인 좋은 사장님을 만났나 싶으면 우리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고, 매물이 괜찮나 싶으면 부동산 사장님과 약간 코드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을 돌면 돌 수록 분명한 건 있었다. 더 많은 부동산을 돌아야 한다는 것.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는 어렵다. 우리가 오래 살 집이니 만큼 더 많은 부동산 사장님을 만나야 하고 더 많은 집을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 우리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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