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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13. 2020

꼭 도시공사 대출을 받아야겠어요?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덥기도 하고 부동산을 골라서 다니는 것도 지쳐 그냥 동네에서 문 연 부동산이면 아무 데나 한번 들어가 보자 싶은 마음에 슬쩍 보고 사람이 있으면 들어가 동네 상황을 여쭈었다.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부동산 사이트에 매물을 올려놓고 부동산 사장님들이 서로 집을 보여주려고 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서로 매물을 공유하지 않는 느낌이 더 크다. 온라인 사이트에 노출되어 있는 집은 부동산도 알고 나도 알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고, 어떤 집은 특정 부동산에서만 꽉 쥐고 절대 공유하지 않으려는 집도 있다. 


 기대하지 않고 무작정 방문한 부동산에 우리가 가진 조건들을 말씀드리니 적당한 집이 딱 하나 있다며 반기신다. 구경하러 갈 수 있다며 살고 있는 입주자분께 전화를 하시는데, 입주자분이 전화를 안 받는다. 이상하네, 집에 있을 텐데, 이상하네를 연발하시며 계속 통화를 시도하시는 사장님. 그렇게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며 직접 가보자고 하신다. 네엣?! 연락이 안 됐는데 무조건이요? 뜨헉 하는 마음으로 우선 따라갔다. 뭐 집을 비웠을 수도 있는 거니까 집 위치나 좀 볼까 싶은 마음으로. 가서 벨을 누르는 사장님. 그런데…? 어머, 사장님- 하고 받는 입주자분.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와봤어요! 하고 말씀하시니, 잤다고 하신다. 아… 약간 돌진형 사장님이시구나. 하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올라가 벨을 눌렀다. 아이를 안고 나오는 부부. 결혼하고 4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짐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집이 좁아져 근처에 있는 좀 넓은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하신다. 통창은 아니지만 거실 쪽 창문으로 보이는 초등학교와 공원.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과 방들. 우리가 그동안 보아오던 갈색 몰딩만 안 보여도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와, 집 깔끔하네요- 깨끗하다를 연발하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베란다는 지금 집보다 1/3 정도 좁다. 화장실도 지금 집과 비슷하거나 더 좁다. 그러나 집이 정사각형으로 반듯해서 소파나 가구 놓기엔 적당하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도 나쁘지 않다. 1층 상가가 공실이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치킨집이나 고깃집이 들어오면 우린 먹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이니까) 집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좋음.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분들이 오래 살고 싶었는데, 짐이 많아져 옮길 수밖에 없다고 한 게 가장 좋았던 거 같다. 더 오래 살고 싶었다고 하는 말 한마디가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우리가 다녔던 집들은 입주자분들께 그런 애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옆동네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1-2년 잠깐 사는 집. 그래서 집에 대한 애정을 느끼기도 집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어려웠다. 서브 화장실에 천장까지 잡동사니가 쌓여있기나, 온갖 버릴 물건들 사이에서 겨우 숨만 쉬며 사는구나 하는 느낌이 대부분이었는데,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사랑받은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잘 봤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부동산으로 돌아와 사장님께 여쭈었다. 집은 마음에 듭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했더니, 가계약이 우선이라 하신다. 계약하기 전에 우선 가계약금을 걸어두면 된다고. 음. 경기도시공사에서 준 서류에 가계약했다가 계약이 불발되면 본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생각이 펀득 들며, 우리의 현재 상황을 말씀드렸다. 우리는 경기도시공사에서 금액을 일정 부분 지원받아 계약하는 거라고. 경기도시공사와 함께 계약하고 싶다고.


 사장님의 당황스러운 듯한? 혹은 다 안다는 듯한 복잡 미묘한 표정이 슬쩍 스쳤다. 경기도시공사… 그건 문제가 안된다, 이 집은 부채도 없다며 괜찮다 하신다. 그런데 단 하나, 집주인이 공동명의인데 이 집 사장님이 계약할 때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엥? 이게 무슨 말씀이시지? 그러면서 계속하는 말씀. 꼭 경기도시공사에서 대출 지원을 받아야겠어요? 에엥? 뭐라고요?


아니 요즘 대출 금리가 얼마나 낮아졌는데... 거기 금리 얼마예요? 2%? 오늘 ** 은행 담당자가 다녀갔는데, 거기 대출 금리가 2.1%래. 비슷한데 왜 굳이 복잡하게 거기서 대출을 받아? 대출 금액이 얼마나 되는데? 그냥 은행에서 받으면 되잖아. 아니, 이 집이 융자도 없고 가구수도 적어서 그거 신청하면 되긴 할 거야. 내가 LH며 중소기업공단이며 많이 해봐서 알아. 근데 이 집 사장님이 계약할 때 못 나와. 여기 공동명의라 계약할 때 두 분 다 나와야 하는데 이 댁 사장님 얼굴 보기는 우리도 어려워. 다다다... 쏟아내시는 사장님. 옆에 계신 배우자분이신 것 같은 남자 사장님도 계속 거드신다. 그거 번거롭기만 하지 뭣하러 거기 통해서 하냐고, 은행 이자 싸니까 그냥 은행 대출받으라고. 


 아? 지금 우리 무슨 상황인 거지? 우리를 몰아붙이는 사장님 부부의 기세에 기가 질리며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호군 얼굴을 보니 호군은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한 상황. 도시공사를 통한 계약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 말씀. 5시에 다른 신혼부부가 그 집 보러 오기로 했어요. 그 부부가 한다고 하면 계약하면 그만이야. 


 아... 그럼 저희도 미련이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정리가 됐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쉽게 계약이 가능한 상황이면 굳이 우리가 이 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았고, 아쉽지만 조금 더 발품을 팔면 된다. 기분이 상했을지언정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건물주분이 매력적으로 생각하실만한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어필했다. 그리고 성격 좋은 세입자인 것마냥 넉살 좋게 나왔다.


 차에 올라타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 구하기 힘드네. 다리만 아픈 일인 줄 알았더니, 예상치 못한 부동산 사장님들과의 기싸움이 따라붙는 일이었다. 


다시, 다른 부동산 가보자. 

응!


쉽지 않다. 부동산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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