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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Sep 09. 2020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증, 필요할까?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집에서 이것저것 버리기 시작하니 뭔가 체계도 없는 것 같고, 이렇게 버리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여 이런저런 검색어로 글을 찾아 읽기도 하고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수납, 정리가 핫이슈가 되는지라 관련된 전문가분이 알고리즘에 뜨기도 하고, 의욕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관련 영상이나 정보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가 발견한 <정리수납전문가 과정>이라는 자격증 프로그램. 검색된 후기를 살펴보니 심지어 무료다. 와... 나라에서 하는 건가? 공짜 과정이 있다고? 대애박.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유튜브라는 서비스의 특성상 뭔가 체계 없이 알고리즘을 따르거나 내가 원하는 주제를 찾아 찾아 5분에서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을 봐야 하기 때문에 뭔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통해 1부터 천천히 알려준다면 내가 뭔가를 정리하고 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회원가입을 하고 과정을 클릭-




 전체 한 달 과정이다. 전체 수강과정의 60% 이상을 들으면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흐음. 뭐, 난 자격증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마구잡이로 버리고 수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시작한 과정이니까 시험에 연연하지 말자 싶었다. 뭐, 내가 정말 이 분야에 재미를 느끼고 도전해 볼만하다고 느끼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지 뭐. 


 처음 한두 과정은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세 번째부턴 본격적인 수납 정리법을 품목별로 알려준다. 옷 정리, 아이방, 서재, 싱크대, 냉장고...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견적을 내고 고객과 상담하는 법까지. 약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전체 과정을 들었다. 평일 오전, 하루에 한과정은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종종 놓치는 날이 있어 나중엔 하루에 두 개씩 꼬박꼬박 들었다. 들으면서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싶었던 부분도 있었고, 이런 수납은 유튜브에서 본 방법이 더 좋은 거 같은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그렇게 25회 차 강의를 마쳤고, 형식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시험을 봤다. 그리고? 자격증을 발급받으라며 안내된 내용엔 자격증 발급비 9만 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와우.


 자격증을 바라고 들은 과정은 아니었기에 신청하진 않았지만, 뭔가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다. 이렇게, 결제하는 사람이 있겠구나. 내가 한 달 동안 시간과 노력을 들여 들었으니까 뭔가 증거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과 (자격증은 기간 내 신청하지 않으면 수강 자체가 소멸) 이런 금액 지불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에겐 트로피 같은 느낌으로 결제가 쉬울 수 있겠구나. 그제야 난 이런 자격증 과정이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내가 교육과정을 수강한 단체의 이름을 구글 검색창에 입력해봤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는 힘 빠지는 뉴스들. 한숨이 나올만한 검색 결과였지만 너무 실망은 하지 않았다. 내 나름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수강이었고, 수강하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유튜브에서 본 정리법과 비교하며 정말 나의 '기준'을 세우기엔 충분했으니까.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 다 이런 마음으로 클릭 버튼을 누르진 않을 터. 이 길 밖에는 없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강 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힘과 용기를 얻고, 그 에너지로 진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볼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이런 결제 시스템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나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이후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건 너무 섣부르지 않을까. 자격증 취득의 꿈보다 이 과정을 수강하며 정말 이 일이 자신과 맞는지, 자격증을 얻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수많은 정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보면 9만 원을 결제해야 하는 그 순간이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기록이 앞으로 자신이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될 거니까.


 내가 이 과정을 수강하며 배운건 다양한 수납방법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건 '무조건 버려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그것을 정리하고 수납하여 깔끔하게 살기란 100%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비워내야 정리든 수납이든 할 수 있다. 수납장에 놓인 온갖 장식품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난 비워봐야겠다. 비우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으니까. 


 자격증이 갈급하다면,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기관의 성격을 잘 검색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면 계속 버튼을 누르길 추천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니. 


과정을 마치고 난 뒤 이렇게 기다란 정신승리 글을 쓸 필요가 없도록.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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