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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Sep 14. 2020

애증의 당근이여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첫 당근 거래를 할 땐 신이 났다. 우리 집에 처박혀있던 물건을 누군가는 필요하다 말하고, 돈을 주고 사가니까. 내 물건도 비우고 돈도 생기는 기분에 자랑을 해댔다. 당근 너무 좋아. 중고마켓 사랑해요. 내가 그걸로 얼마를 벌었다니까? 대단하지? 


 그렇게 세 달이 지났다. 처음 중고거래를 시작했을 땐 매 순간이 즐거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선 조금 피곤하다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씩 예의 없는 구매자를 만나면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이 있다. 정말 없는 게 없는 중고마켓이고, 집 근처에서 바로 거래할 수 있어서 이보다 편할 수 없었고,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던 당근이 나에게 왜 울컥하는 감정을 갖게 해 버렸나. 




 첫 거래장소는 집 근처 도서관이었다. 웬만하면 집 주소는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조건 대면거래, 그 자리에서 돈을 주고받고 물건과 금액을 확인했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나자 내가 도서관까지 가는 일이 너무 귀찮아졌다. 그리곤 옆 집 주소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100 번지면 101번지로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집 근처로 와서 물건을 구매해갔고, 나도 멀리 가지 않아서 편했다. 

 

 그런데... 거래가 잦아지며, 자꾸 내가 알람을 놓치고 구매하러 오시는 분을 기다리게 하거나 약속을 하고 안 오시는 분들이 생겼다. 나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고, 상대방도 이 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돈은 계좌이체로, 물건은 동네 주민센터 무인 택배함에 넣어놨다. 그래 봤자 3000원 내외 금액이니 선입금하는 걸 그리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이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서로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 비대면이 서로에게 필요한 요즘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사기꾼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왜 선입금을 요구하시는 거죠? 시간 맞춰 나가는 게 너무 귀찮아서요. 그럼 당근 거래를 하시면 안 되죠. 아... 네... 


 '당근'

 '제가 사고 싶어요!!'

 '네~ 가져가세요'

 '1000원만 깎아주시면 안 되나요?'

 '네...?'


 파스타 접시와 면기 각 한 개씩을 3000원에 내놓았다. 각각 3000원이 아니라 두 개에 3000원. 식빵 한 봉지 가격으로 드릴게요- 라면 두 개 가격으로 드릴게요- 같은 기분으로 내놓은 거다. 나는 사용하지 않지만 아까우니까 누구든 가져가세요,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거기서 다시 1000원을 깎아달라고 하신다. 2000원에 사갈게요. 내가 얼마에 올려놓던지 꼭 흥정을 시도하신다. 물론 이런 흥정은 오천 원 이하의 가격에서 주로 발생한다. 몇 번은 그러세요 했고, 몇 번은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다시 사정을 하는 분과 돌변하는 분이 계신다. 난 왜 1000원 때문에 이 사람과 이런 실랑이를 하고 있나. 


 결국 난 무심한 판매자가 되어버렸다. 상품에 애정을 담아 사진을 찍고 소개를 하고 판매에 열심을 기울인 당근 러버였던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그렇게까지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는다. 깎아주세요- 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이후 반응에 대해 상처 받지 않으려 하고, 서로 만나는 시간을 정해놓았음에도 그 시간이 임박해 연락이 없어도 그러려니 한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매너 없이 잠적하신 분이 다시 연락을 해 다른 상품을 구입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당근의 고마운 점은 이렇게 나와 채팅을 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상단에 예전에 대화한 적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그래서 그분의 과거 채팅 창을 찾아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 잠적하셨던 분인걸 확인하면 사실을 알려드린다. 예전에 저와 이런 적이 있으셔서 거래가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그리고 차단. 비매너 거래에 바로 차단할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본인의 행동들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굳이 처음부터 차단하진 않는다. 

 


 

 이사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내가 우리 집 물건을 줄이는 방법은 팔거나 버리는 수밖에 없으니, 당근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구매자의 경우 군소리 없이 물건을 구매하시고, 좋은 후기도 남겨주신다. 그러나 난 더 이상 당근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추천하진 않는다. 유용하긴 하나,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니까. 이런 서비스도 있어하고 알려줄 순 있어도 처음처럼 너무 좋아, 너도 꼭 해봐, 라는 말은 꺼내기 어려워졌달까?


 나에겐 참 감사하면서도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당근. 이사 가기 전까지만 너를 손에서 놓지 않으마- 내가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하게 되면 파는 일 대신 구입하는 일로 너를 만나겠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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