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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Oct 27. 2020

휴일 같았던 이사의 최후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내가 이사를 너무 만만히 본건 아닐까.

 업체를 선정하고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이사업체 광고를 보면 포장이사하는 날은 고객님의 휴일이라고 하던데. 난 왜 그 말을 내심 기대하고 믿고 있었던 것일까. 결론은, 망했다? 아니 아니 약간 후회가 된다. 정도로 하자. 




 이사 업체는 굉장히 친절했다. 원래는 남자 두 분 여자 한분이면 되겠다고 하셨는데 최종 남자 세분 여자 한분이 오셔서 이사를 도와주셨다. 정시에 도착하셔서 사다리차가 들어갈 위치도 확인해 주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미리 짚어주셨다. 7시 30분까지 1층에 모여 준비하고 이런저런 이사 용품들을 가지고 올라와 짐을 포장하기 시작. 20평도 안 되는 집에 이사 업체 분들만 넷. 우리까지 여섯이 모여 있으려니 우리가 이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조심스레 여쭈었다.


 "저희 나가 있을까요?"

 "어휴- 저희가 다 알아서 합니다. 편히 밖에 계세요"

 "네네-"


 느무 좋다 하곤 슬렁슬렁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안 먹던 아침을 먹었다. 이사하다보면 못 먹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좀 먹자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돌아가 근처에 앉아 이삿짐이 내려오는 것을 구경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위층에서 사장님이 부르신다. 


 "한번 올라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에-"


 위로 올라가니 냉장고 선반이 바닥에 와장창 깨져있다. 냉장고 청소가 기본 서비스 중 하나인데 이모님이 선반을 닦으시다가 물기를 말리려고 올려놓으셨는데 미끄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는 사장님. 바로 서비스센터에 연락해서 동일한 선반으로 구매해서 보내주시겠다고 하셔서 알겠다 말씀드렸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고 청소해 주시다가 그런 건데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웃어 보였다. 그때부터 그냥 그 자리에서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한 번의 실수겠지 하고 다시 쪼르르 내려와 사다리차에서 짐 내려오는 걸 구경했더랬다 난. 


 이사하는 거 다 봐서 뭐하나 싶어 호군을 남겨놓고 알바를 다녀왔더니 6시. 짐이 온 집안에 빼곡하다. 우리 집에 짐이 이렇게 많았어?? 뭐 이렇게 안 들어간 짐이 많아??? 기함을 했다. 책장에 들어가는 책들이나 서류 등은 그 자리에 고대로 잘 넣어주셨다. 하지만 뭔가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던 물건들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거실에 모여 있었고, 거실장과 붙박이장에 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뒤섞여 있는 상태. 뭐- 수납은 다시 하려고 했으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우리가 하면 돼! 하고 정리를 시작했다.




 선반이 하나 없어진 냉장고 안 수납을 다시 정리하는데, 서랍이 이상하다.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 어? 뭐지? 싶어 서랍을 빼보려고 하는데 냉장고 옆쪽으로 가벽이 있어 문이 다 열리지 않아 서랍이 빠지질 않는다. 서랍을 빼려면 냉장고 문을 다시 뜯어야 하는 상황.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냉장고 문을 뜯어보기로 했다. 드릴을 가져와 위쪽 나사를 빼고 문쪽에 붙은 선반을 들어내고 문짝을 호군 혼자서 낑낑- 거리며 뜯은 뒤 서랍을 들어내니 서랍 뒤쪽 고정시키는 고리가 반쯤 부서져 있다. 하아... 고리가 부서졌더래도 맞춰서 잘 넣으셨으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 부서진 고리로 대충 집어넣으셔서 균형이 안 맞았던 것. 부서졌다고 사진을 찍어 클레임을 걸고 다시 물건을 받고 냉장고 문짝을 들어낼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넘어가자. 잘 넣으셨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어. 잘해주셨잖아 이사하면서 이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했는데, 호군이 한마디 덧붙인다.


 "사실 냉장고 문짝도 찍고 가셨어..."


 엥? 무슨 소리야? 하고 냉장고 문을 보니 앞쪽에 뭘로 찍은 듯 살짝 파여있다. 오븐을 옮기시다가 오븐 모서리로 문짝을 찍었다고 한다. 그건 호군 보는 앞에서... 호군이 어어? 하고 있자, 오븐을 옮기던 분이 어어? 아유 어떡해. 하고 마셨다고 한다. 그땐 호군이 한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던 상황인데 결과적으론 선반을 깨 먹고 문짝을 찍고 서랍 고리까지 부셔놓은 상황. 이게 뭔 일 이래- 전화해? 클레임 걸어? 하다가 말았다. 이렇게 이사하면서 조금씩 망가뜨리다가 결국엔 새로 사는 거 같아- 하고. 


 이사하면서 사용한 걸레 좀 빨자. 세탁기는 잘 설치됐지? 많으니까 세탁기나 한번 돌려보자.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잘 돌아가는 세탁기. 음. 이건 잘 설치됐군. 했는데, 탈수가 안된다. 탈수에서 계속 삐삐- 소리가 나며 헹굼과 탈수를 반복하는 상황. 세탁기 고장 났어?? 하고 세탁기를 이리저리 살피니 물 빠지는 호스가 위를 향해있다. 물이 많을 땐 압력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지만 물을 모두 빼야 하는 탈수 상황에서는 호스가 위를 향해 있으니 물이 제대로 빠질 수 없는 상황. 세탁기 위치가 물 빠지는 배관보다 낮았던 것. 호스를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탈수까지는 이리저리 됐다. 그런데 그렇게 놓고 사용하니 많은 빨래를 돌리면 베란다에 홍수 발생. 으허헝. 결국 세탁기 밑을 괴야하는 상황인 것. 분명 설치하면서 아셨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하고 그냥 갈 수가 있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세탁기 레벨이 안 맞고 호스를 배관에 연결시키면 물이 안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우선 설치했으니 나중에 한번 확인하셔라- 말씀해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우선 동네를 돌며 버려진 벽돌을 찾아 헤맸다. 비슷한 높이의 벽돌 찾아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결국 4개를 구해와 세탁기 바닥에 괴어 위치를 높여주니 물이 잘 빠진다. 


 깨질만한 물건들은 미리 옮겼기에 망정이지- 업체에 맡겼으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상상만으로도 살짝 두려워졌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부서져있을 물건들을 생각하니 휴일처럼 보냈던 이삿날이 좋지만은 않았음을 깨닿게 되는 순간.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시고 잘 대해 주셔서 다시 이사하게 되면 이 업체에 부탁해도 좋겠다가 이사 초반 우리가 나눈 이야기였다면 이사가 완료된 이 상황에서는 과연 내가 다시 이 업체를 부를 수 있을까? 가 되었다. 이사하는 내내 다른 집 이사인 것 마냥 구경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조금은 후회되기도. 옆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잔소리를 할 성격은 못되지만 이후 닥칠 이사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우리는 성격이 잔소리를 늘어놓을만한 사람들은 아니라 다음 이사에서도 닐리리야 하고 놀 가능성이 더 많지만.


 어쩌겠어요. 이렇게 살아야죠=3

 다른 분들은 저의 이런 경우를 보고 좀 더 나은 이사를 하시길 바랍니다. 으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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