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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Oct 29. 2020

선반에 손이 닿질 않아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이 글은 이사하기 전, 주방을 먼저 옮긴 이야기. 


 주방의 깨질만한 물건들이나 건담류는 우리가 직접 옮기겠다고 했으니 우선 깨질만한 물건들을 모아 포장을 시작했다. 큰 박스가 없어 옷을 담아뒀던 리빙박스에 그릇들을 종이 포장하여 넣기 시작. 난 다행히 집에 사용하지 않는 습자지가 잔뜩 있어 이 습자지로 물건을 포장. 예전 같으면 집에 넘치는 신문지로 바리바리 쌌을 텐데, 신문을 보지 않는 시대라 예전 신문지가 채워주던 삶의 어떤 부분을 새로운 것들로 채워야 한다. 집에 있는 습자지로 물건을 감싸고 이번에 몽땅 다 버릴 수건을 반으로 잘라 그릇 사이사이 끼워 넣어 두 박스 정도를 만들었다. 더 많이 가져가면 좋겠지만, 들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우선 이렇게 시작해볼까?


 사용빈도가 낮은 유리컵과 술잔들, 찻잔들을 먼저 옮기고, 유리 글라스락이나 보관용기들을 가지고가 깨끗이 닦은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아니, 어색한 건가? 뭐지? 새로운 수납장에 물건들을 넣는데 너무 불편하다. 팔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 한참을 옮겨 넣다가 서서 수납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호군이 다가와 묻는다. 


 "왜? 문제 있어?" 

 "나 너무 불편해. 전에 유리컵 넣고 꺼낼 때 이렇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불편하지?? 매번 나 주방 계단 밟고 올라서 그릇 꺼내야 돼??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어떡해? 두 번째 수납장에 손이 안 닿아-"


 문제를 물어봐주니 술술 답이 쏟아진다. 수납장이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는 것. 전엔 싱크대가 낮아 수납장 위치도 낮았는데 지금은 싱크대 높이가 높아지니 수납장 위치도 자연스레 높아진 것. 오빠는 설거지할 때 허리 아프지 않을 것 같아 좋다고 한 싱크대인데- 내가 사용하려고 보니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는 사용이 어려울 것 같은데... 노려보고 있으려니 호군이 한마디 한다. 


"높이를 낮추면 되는 거 아냐? 그릇 빼봐. 제일 아랫칸으로 낮춰줄게."


 오잉? 그러고 보니 수납장 옆에 높이를 조절하는 구멍들이 뚫려있는 것. 다보(선반 구멍에 끼워 넣는 쇠로 된 작은 받침)를 가장 아랫칸으로 옮기고 나무판을 마지막으로 옮겨주면 수납장의 높이가 스윽하고 내려온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 수납장 다 옮겨줘! 가장 아랫칸으로!"

 "... 그러려면 넣은 그릇 먼저 빼야겠는데?"


 으헝. ㅠ 그래도 뭐! 다 옮긴 것도 아니고 일부만 옮기다가 알아챈 건데- 이게 어디야 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릇을 총총- 옮겼다. 키를 낮춘 선반은 다행히도 물건을 높이 쌓지만 않으면 내고 넣는데 문제는 없었다. 미리 와서 이렇게 조금씩 조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신나하고 있으려니 다시 호군이 한마디 한다.


 "이런 식으로 수납할 거야? 집에 있는 그릇 다 안 들어갈 거 같은데?"


 뭐라고? 그러고 보니 전에 살던 집 수납장 한 칸 정도를 가져왔는데 난 이미 세 칸 정도를 쓰고 있다. 전보다 그릇장이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물건을 넣다 보니 폭과 너비가 좁고 문만 많아 얼핏 봐서는 더 넓어 보였던 것. 나 그릇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더 줄여야 해???? 


 더 줄일 수 있지.... 

그런데 주방 물건이 한둘이 아닌데 그 양을 어떻게 내가 가늠할 수 있겠어. 

... 우선은 주방을 통째로 옮기고 생각해 볼까?


 그렇게 일은 조금 더 늘고... 결국 주방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가져와 여기저기 넣기 시작했다. 결과는? 물론 실패. 다 들어가지 않는다. 짐을 한번 더 줄이든지, 새로운 수납장을 사야 하는 상황. 그러나 미니멀리즘 책을 수권 읽은 지금 나에게 새로운 물건을 사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버리는 게 답인 상황. 우선 플라스틱 김치통을 꺼냈고, 두번짼 냄비 두 개를 꺼냈다. 대용량 액체 세제는 두 번 다시 구매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용기에 소분해 놓고 비닐 용기를 버렸다. 유리잔 다섯 개와 머그컵 다섯 개도 이별. 이사를 준비하면서 엄청 버렸는데, 수납이 되지 않느다는 이유로 다시 이렇게 버리다니. 살림이 가벼워진 만큼 기분도 가벼워져야 할 텐데 아직은 얼떨떨한 느낌. 하지만 이 물건 모두 없어도 지내는데 문제없다는 게 함정.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오니 강제 비움이 된다. 집에 나를 맞춰야지, 이 작은 집에 수납 가구를 더 놓는 건 말도 안 되지. 지금 가지고 있는 가구들이 집에 다 들어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데 말이죠. 그렇게 집에 맞춰 그릇을 비워내니 그 양이 엄청나다. 옆에서 지켜보는 호군은 너무 버리는 거 아냐? 하고 물어보는데, 그럼 넣어보시던지- 하고 바라보니 끙- 버리자. 하고 만다.


 이렇게 전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렵니다. 

 한걸음, 한걸음.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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