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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Nov 02. 2020

비움은 습관, 당근은 선택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이사하고 버리기 시작하며 조금씩 살림을 줄여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 수준에선 아무래도 무리. 소파도 밥솥도 전기포트도 없는 삶은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 비움으로써 얻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그것들을 다 버리면 물 끓이다가 밥을 하다가 울화가 치밀어 오를 것만 같으니 내 삶의 방식과 맞지 않다. 하지만 지금 지내는 집에서 물건이 넘치는 걸 보는 것도 괴롭다. 수납공간이 줄어들며 수납공간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물건들을 바라보는 건 심히 괴로운 일. 그래서 매일 조금씩 비워낸다. 살피고 다시 살피면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버릴 생각을 하면 약간의 쾌감까지 느껴진달까. 




 지금 우리 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건은 읽고 싶었던 책이고 입을 것만 같은 옷이다. 읽었던 책과 읽진 않았지만 흥미가 없어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은 이미 중고서점이나 고물상, 분리수거함에 차례대로 넘겼다. 그러나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부채감을 가진 책들은 차마 정리하지 못해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장이나 두장씩 책장을 넘기고 있는 중.  옷도 이상하게 많다 싶은 것들은 하나씩 꺼내서 입어보고 작거나 지금 내 몸에 어울리지 않다면 의류 수거함으로 조금씩 가져다 버리고 있다. 


 버리는 일이 습관이 되다 보니 지금은 크게 마음을 먹지 않아도 매일 하나씩 둘씩 버릴 물건들이 눈에 보인다. 냉장고에서 삼 년 넘게 살고 있는 과일청이나 걸레로 쓰겠다고 잘라놓기만 하고 그대로 쌓여있는 수건들, 입으면 몸을 압박해서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속옷, 베란다가 좁아지며 더 이상 둘 장소를 찾기 어려워진 빨래 바구니, 마찬가지로 용도가 모호해진 쓰레기통은 모두 처분 리스트. 


 리스트에 오른 물건은 모아서 상자에 넣어놓고 하루에 한두 번씩 쳐다보며 계속해서 생각한다. 아쉽지 않을까, 저 걸레는 언젠가 한번 쓸 일이 생기지 않을까, 속옷은 면 부분만 다시 잘라내서 걸레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미 수건 잘라서 만든 걸레가 이렇게 많아서 다 버리려고 하는데 다시 속옷을 잘라서 걸레로 만드는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나, 내가 저 걸레를 저렇게 다 버려버리면 다음에 또 걸레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오만가지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다고 모두 다 가지고 있으려니 둘 장소도 마땅치 않고 그것을 대체할 물건들도 가득하다. 어휴=3 


 버리겠다고 결심한 물건은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봉투가 거의 차서 버려야겠다 싶을 때 그 쓰레기봉투에 눌러 넣어 버린다. 쓰레기봉투는 누르면 누르는 대로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니 열심히 눌러서 남은 공간 없이 쓰레기봉투를 꽉 채워 내놓는다. 전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버릴 물건들을 모아 채우기 바빴지만 지금은 조금씩 자주 버리며 봉투의 남은 공간을 채워 넣고 있다. 




 버리기엔 아깝고,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 당근에 올렸다. 빨래 바구니와 쓰레기통은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몇천 원 수준의 크지 않은 금액. 무료 나눔으로 올리면 금방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나서겠지만, 채팅하는 과정에서 말이 짧고 예의 없는 분들을 뵌 적이 있기에 천 원이든 이천 원이든 금액을 붙여 올린다. 정말 필요해서 검색해 봤다면 내가 올린 금액이 절대 큰 금액이 아니라는 걸 서로 알고 있으니까. 


 당근에 올렸다고 무조건 판매가 되진 않는다. 다이소에만 가도 저렴한 새 상품이 가득한데, 굳이 중고 상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도 다이소 물건이 아니라 조금 괜찮은 중고를 찾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 일 수 있으니 언젠가 판매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하는 거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판매되지 않으면? 난 이걸 버려야 하나, 무료 나눔이라도 해야 하나, 다시 사용하는 건 어떨까, 고민에 빠지겠지만... 지금부터 그 고민을 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지 뭐.


 이사하니까 짐을 줄여야 하니까 버려야 돼-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한 비움이지만 이제는 제법 비우는 일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일 년을 지내면 우리 집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 정말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습관대로 구매하지 않고, 생각하며 소비하는 삶.


 비움은 습관, 당근은 선택.

우리 집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생각한다. 나의 삶의 방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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