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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Nov 30. 2020

반짝반짝 빛나는 화장실

오늘의 청소 - 수전 닦기

 시댁 식구들이 총출동하여 우리 집으로 오신다 한다. 집들이, 새집 구경 같은 이름표를 달고.


 사실 이사 전 한번 오시긴 하셨었다. 집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 청소를 도와주시겠다고. 어린 조카들 아주버님과 형님 어머님까지 수건을 들고 유리창과 창틀을 닦아주셨다. 박박. 그리고 이삿짐을 모두 옮긴 지금, 겸사겸사 집 구경도 하고 같이 밥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 음식은 적당히 시키기로 하고 과일이나 디저트류는 조금 구매했다. 가능하면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사용하고 남은 일회용품은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하는 짐이기에 번거롭지만 설거지를 좀 하기로 하고.

 

 문제는 청소였다. 집에 짐을 많이 덜었고,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이 많이 더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먼지는 쌓였고, 머리카락은 굴러다녔고, 소파며 카펫에 뭔지 모를 알갱이들이 손에 잡혔다. 필경 과자 부스러기들 이리라... 카펫과 소파 커버를 탈탈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도 하였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다. 조금 부족한 느낌? 깔끔은 한데... 와- 너무 집 깨끗하다, 하지는 않은 약간 부족한 상태.


 뭐지? 뭐지? 하다 얼마 전 읽은 장류진의 소설 <도움의 손길>이 떠올랐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도와주러 온 청소도우미 이모님. 남들이 신경 쓰기 어려운 지점까지 먼지를 척척 닦아내고 깨끗하다, 는 느낌이 절로 들게끔 해주시는 이모님.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만 주인공은 설마를 거듭 한다. 그날도 수전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며 화장실 청소를 끝낸 줄 알았고 페이를 지불했건만, 화장실에 들어가 손으로 세면대 안쪽을 만지니 물 때가 그대로다. 고심 끝에 선택한, 세상 유능한 줄 알았던 이모님의 실력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얼핏 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방식인 것. 


 예전에 후배가 입이 마르게 칭찬한 스테인리스 연마제 제품을 사놓은 게 기억이 나 꺼내보았다. 연마제는 영국 제품을 써본 적이 있었는 데 사용 후 스테인리스의 광택이 다 죽어서 (...) 갖다 버린 기억이 있다. 이번엔 후배가 사용해 보고 강추한 제품이니 조심조심 수세미에 덜어 수전을 슥슥 닦았다. 세면대와 샤워부스, 휴지걸이까지 수세미로 문질문질- 광택까지 없어지면 너무 곤란한데 너무 박박 닦진 말아야지 싶어 슬슬 문지르고 물을 좍 뿌려 거품을 씻어내니, 완전 새 것인 것 마냥 반짝인다. 우와- 수전 하나 닦았을 뿐인데 화장실이 빛이 난다.


 눈으로 효과를 확인하고 나니 이왕 시작한 거 여기저기 닦고 싶다. 다시 수세미에 연마제를 묻혀 도기로 된 세면대를 닦고 주방으로 넘어가 주방 수전까지 닦았다. 스테인리스에는 다 사용해도 되니까 싱크대로 되겠네? 싶어 싱크대까지 닦아낸 뒤 물로 헹구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해줬다. 그랬더니... 반짝반짝 집에서 빛이 난다. 와 다 더러워도 수전 하나 깨끗하면 새집처럼 보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다. 과연- 청소 이모님의 노하우. (이런 노하우를 겟하다니... 장류진 작가님 보면 땅을 칠 노릇이지 않을까.)


 집에 올러오시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시작한 '얼핏 보기에 깨끗한' 수전 청소였지만, 의외로 청소를 하고 나니 내 기분이 좋아졌다. 물때와 얼룩으로 닦아도 닦아도 그만이었던 수전인데, 한번 닦아놓고 나니 그다음 청소가 어렵지 않다. 한두 방울 물때가 눈에 보이면 씻고 닦은 수건으로 슥슥 문지르고 빨래 바구니에 던져놓는다. 그랬더니 일주일이나 가겠어, 생각한 수전이 생각보다 오래 깨끗하다. 


 부끄럽지만 남 보여주려고 시작한 청소인데, 결국 나를 위한 청소가 되었다. 사놓고 사용하지 않아 저건 언제 버리지 했던 연마제가 자기 역할을 찾았다. 장류진 작가님의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 리뷰를 꼭 써야지 했는데,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리뷰도 한다. (제가 꼭 제대로 글쓰기를) 시간이나 때우는 소설 읽기라고 생각했는데 의미 없는 읽기는 없고, 내가 하는 일 중 나를 위하지 않은 일이 없다. 


 난 오늘도 허투루 보낸 시간 속에서 배우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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