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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Dec 02. 2020

청소가 너무 귀찮은 날

오늘의 청소 - 로봇청소기

 바닥은 한번 쓸던지 닦던지 해야 할 텐데, 내 눈 앞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데굴데굴 구르는데-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컨디션도 안 좋고 열심인 마음도 쏙 들어가는 그런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 자동재생만 주구장창 보게 되는 그런 날... 그런데 집에 친구가 온다고 한다. 요즘 시대에 왜 놀러 와, 그냥 집에 있어- 하고 싶지만 독박 육아 중인 친구가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다고 하니 마음이 짠하다. 그래, 집으로 와. 대신 우리 집 더러워. 먹을 것도 없어. 먹고 싶은 거 사오든지 시켜먹든지-


 한 시간 뒤에 아이와 함께 온다고 하는데 난 씻지도 않았고, 설거지거린 쌓였고, 대충만 둘러봐도 청소 안 했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쩔 수 없지. 난 오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니까. 그래도 삼십 개월도 안된 애가 집에 온다는데 바닥은 좀 닦아야 하나? 비염이 심해지거나 알러지라도 올라오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도 한 번. 그래도 난 청소기를 들 열정도 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눕고 보고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 정도.




 조그만 집에 왠 청소기가 이렇게 많냐 하겠지만, 우리 집엔 청소기가 3개가 있다. 하난 본체와 청소 스틱 사이에 긴 호스가 달린 일반 청소기. 결혼할 때 지인분이 브랜드 제품으로 꽤 비싼 걸 선물로 주셨다. 끌고 와서 선을 빼서 코드를 꼽고 본체를 끌고 다니며 청소하는 일이 귀찮아 호군이 청소할 때 사용한다. 흡입력 하나는 끝내줘서 소파며 카펫이며 창틀 문틀 할 것 없이 구석구석 청소할 때 사용하면 딱이다.


 주로 내가 사용하는 건 청소 밀대. 바닥에 극세사 걸레나 청소포 따위를 끼우고 슬렁슬렁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머리카락과 먼지를 주로 닦는다. 자잘한 부스러기까지는 깔끔하게 모아지진 않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더러운 것들을 없애기엔 이보다 더 빠르고 쉬울 수 없다. 물론 극세사 걸레를 사용하면 빨래를 해야 하긴 하지만 샤워할 때나 머리 감을 때 바닥에 놓았다가 적당히 주물주물 빨아 화장실에 대충 널어놓는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걸레 대략 헹군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너무 정성을 들이지 않을 정도로만.


 마지막 남은 하나는 로봇청소기다. 청소기 선물을 받을 줄 모르고 구매한 로봇청소기. 이 녀석은 자동청소 기능이 가장 매력적이다. 매일 저녁 5시 청소 예약을 걸어놓으면 청소기가 알아서 온 집안을 청소하고 충전기로 돌아온다는 게 가장 멋진 점. 그땐 둘 다 맞벌이를 하던 상황이라 약간의 집안일이라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기기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상황에서 청소까지 해야 한다면 정말 죽을 맛일 테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만 있으면 좋으련만, 이 로봇청소기의 높이와 우리 집 붙박이장의 높이가 엇비슷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청소를 열심히 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매번 붙박이장 아래 틈에 끼여 나가지도 옆으로 이동하지도 못한 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만 하다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다 . 처음 청소기에 한 줄이 쫘악- 하고 갔을 때는 기절할 만큼 속이 쓰리고 아프더니, 좍좍 온몸에 상처가 난 지금 줄이 하나 더 간다 한들 어쩌겠나 하고 보고 만다. 어쩌겠나여.


 이사 온 뒤 안방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로봇청소기가 오늘은 일 좀 해야겠다 싶어 몸을 이끌고 안방으로 건너가 엄지발가락으로 작동 버튼을 누른다. 조금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으면 물걸레포를 끼우면 되겠지만 난 먼지랑 머리카락만 치워도 오늘은 충분하다.


 선물받은 비싼 청소긴 창틀이나 구석 먼지를 빨아들이는데 좋으니까 버릴 수 없고, 밀대는 뭐 얼마 하지도 않기도 하고 자주 쓰니까 버릴 수 없고... 로봇청소기는 당근에 팔까 버려야하나 고민한 아이템인데 저렇게 상처투성이 청소기를 비싸게 팔 수도 없고 버리기엔 너무 본전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안방 구석에 방치해 뒀는데 이런 날 발가락만 까닥하면 대략 청소가 되니 오늘만큼은 매우 감사한 녀석.


 더 이상 쌓아두고는 못살겠어서 온갖 것을 다 버렸는데, 안버리고 두니 사용하는 물건도 있다. 버렸다면 오늘 같은 날 엄청 그리워하며 찾았겠지- 버린 나녀석을 때리며 후회했겠지- 싶다. 한달에 한번만 사용해도 오늘처럼 만족도가 크다면 품고 있어도 괜찮겠다. 상처투성이로 사용해서 미안하다고 대신 네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내가 함께 해주겠다고 얘기해줘야지. 나의 귀차니즘과 게으름의 동반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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