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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Dec 07. 2020

행주 냄새 너무 싫다

오늘의 청소 - 행주 소독

  아 귀찮다. 집안일.


 맞벌이 시절엔 뭐든 사용하다 잘 버리고 또 잘 사서 썼는데- 외벌이에 집순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내겐 집안일이 숙제가 되어버렸다. 예전처럼 소비의 규모를 쉽게 늘릴 수도 없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쏠쏠한 돈이 든다는 걸 깨닫고는 쉽게 버리지도 못하겠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사서 사용하고 싶지만, 쓸데없는 소비는 피하고 싶고, 가능한 지구에 피해를 덜 주는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이런저런 마음들이 모이다 보니 물건 하나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얼마 전부터 식탁에서 퀘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어? 냄새가 나네? 하고 지나갔는데, 곧 내 손에도 그 냄새가 배어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죽을 것처럼 고개를 흔들어댔다. 범인은 한 달 정도 지난 행주. 김치 국물을 닦고 잘 빨지 않았던 탓일까. 젓갈 냄새 같기도 하고 된장 냄새 같기도 한 냄새가 행주가 지나간 자리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잘 빨았어야 하는데 내가 좀 귀찮았나 보다 싶어서 세제를 넣고 미친 듯이 비벼 빨았다. 물기를 꾹 짜서 싱크대에 널고, 화장실에서 비누로 손을 씻었다. 왠지 손에 비릿한 냄새가 남은 것 같아서.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다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야- 얼마 전에 엄청 빨았잖아, 왜 이래. 하면서 킁킁 냄새를 맡으니 행주에서도 내 손에서도 냄새가 난다. 손에서 냄새가 나는 사실을 알자마자 역한 기분이 들면서 헛구역질을 한 번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 손을 씻었다. 안 되겠다 이번엔 소독을 하자 싶었다. 베이킹소다를 물에 풀어 행주를 한 시간 동안 담갔다. 과탄산소다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과탄산소다의 표백력을 알고 있기에 당장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베이킹소다는 기름때를 제거한다고 하니까 기름때까지 좀 제거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다음, 내 행주의 소재를 검색했다. 일 년 전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제주 기념품으로 사 온 행주다. 기념품으로 쓸데없는 장식을 사는 대신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사자는 주의인지라 내 기념품은 쌀이나 소금, 지역 절임류 같은 특산물이 많은 편이다. 그런 맥락에서 제주도에선 행주를 골랐다. 선물하기에도 좋고 내가 사용해도 주방이 화사해질 것 같아서. 구매 당시에는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일 년이 지난 지금 소재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고, 일반 마트에 들러도 이런 행주는 본 적이 없어서 관리가 애매하던 차였다.


 여러 가지 검색어를 시도하다 '디자인 행주'라는 검색어에 비슷한 제품이 걸렸고, '제주'라는 검색어를 추가하니 떡 하니 제품이 나왔다. 셀룰로오스 행주란다. 내가 쓰는 행주는. 무려 무형광증백제 인증도 받았고, 항균 테스트 인증에 친자연소재라는 어마어마한 문구가 뜬다. 어머- 엄청 좋은 행주 쓰고 있었네. 그리고 다시 검색. 셀룰로오스 행주 살균 혹은 삶기라는 검색어. 상품이 검색되는 것과는 반대로 실제 사용 후기는 그닥 검색되지 않는다. 판매는 열심히 하지만 실 구매자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며 올린 리뷰는 많지 않은 편. 냄새 안나는 행주라는 광고 문구는 사기다. 한 달 사용하니 냄새난다. 


 어떡하지 싶어 우선 다시 부엌으로 가 코를 킁킁거렸다. 역하다. 베이킹소다로는 살균까진 어렵구나. 식초를 쓰긴 싫다. 냄새 때문에 소독하는 건데 혹시 식초 냄새까지 더해지다면... 참을 수 없다. 더 이상 냄새나는 상태로 행주를 사용할 순 없으니 버리는 걸 각오하고 과탄산소다를 써봐야겠다. 저 예쁜 그림들이 다 사라져 버린대도 할 수 없다. 냄새나는 행주는 주방에서 아웃이니까. 스테인리스 용기에 깨끗하게 빤 행주를 넣고 과탄산소다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보글보글 김이 올라오고 행주가 떠오른다. 뜨면 안 되는데- 싶어 뒤지개를 꺼내 꾹 눌러줬다. 다시 한 시간 뒤 보자. 


 한 시간 뒤 확인하니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흘러나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행주를 잘 비벼 헹구고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98% 정도 사라진 것 같다. (기분 탓인지 2%는 남아있는 듯) 예쁜 그림도 살아있는 걸 보니 과탄산소다에 날아가는 잉크는 아니었나 보다. 과탄산소다도 소용이 없으면 그다음엔 푹푹 삶아 빨아보려고 했는데 다행히 삶진 않아도 되겠다. 




 손바닥만 한 행주 한 장이 6000원이다. 친환경이고 여러 가지 좋은 요소들이 많이 있는 제품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용하기엔 너무 과한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다시 어딘가에 놀러 간다면 재구매할 의사는 있다. 그건 내가 행주를 사는 게 아니라 기념품을 사는 거니까. 6000원짜리 기념품이면 너무 저렴한 편이지. 하지만 기념품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순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예쁜 그림이 인쇄된 행주 한 장이 가져다주는 행복도 있지만, 저렴하고 질 좋은 행주가 주는 만족감도 느껴보고 싶다.


 이 행주를 얼마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새로운 행주를 사야겠다 싶어 고민하다 이번엔 소창 행주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것도 낱장으로 사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고, 한 겹, 두 겹, 세 겹 행주 뭐 다양하다. 난 소창 행주 초보자이니까 남들이 좋다는 걸로 한두 장 사서 써볼까 하다가 집에서 할 일도 없는데 손바느질이나 해보자 싶어 원단으로 덜컥 구입했다. 낱장으로 사면 2-3천 원 하던데 원단으로 사면 몇 장이나 나오려나 기대가 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손바느질할 생각에 약간 두근거리기도 하다.


 배송이 되면 내가 진짜 각 잡고 앉아 얌전히 바느질을 해봐야지. 그래서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행주를 팍팍 삶아 쓰며, 내 손길이 닿은 행주를 오래오래 예뻐해 줘야지. 


 물론 현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같이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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