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Dec 29. 2020

내 마음도 닿을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 - 바이올렛 에버가든

 친애하는 바이올렛 에버가든 님께


 이 편지가 당신께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첫마디를 안녕하세요-라고 흔한 편지의 시작처럼 해야 하는 건가도 고민했어요. 그러다 인사는 접어둬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이 편지는 제가 당신께 보내는 팬레터일 테니까요. 팬레터를 써본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마음인 만큼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왜 넷플릭스는 당신의 이야기를 제 리스트 상위에 노출시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주로 유명하다는 디즈니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주로 봤거든요. 그러다 해가 길게 느껴지는 어느 오후, 오늘은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도 조금은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구요? ㅎㅎ 


 사실 전,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전쟁 미화나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걸 제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실제 생각 없이 고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도 하였고요.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고를 땐 가능한 사전에 어떤 내용인지 줄거리를 보고 고르는 게 대부분인데, 당신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검색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앉아 당신이 살아온 과정, 당신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다 보고 난 뒤,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운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에 편지를 보낼 대상을 떠올리고 또 떠올려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보일 기쁨보다 내 부끄러움이 더 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 마음을 보이는 게 매우 부끄럽거든요. 그래서 당신께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내가 이렇게 떠들어대도 당신이라면 엷은 미소를 띠며 읽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동 수기 인형 

편지나 글을 쓰고 싶지만 종이로 옮기기 어려운 사람에게 그 마음을 재구성하여 전달해주는 대필자

 

 당신의 직업을 이렇게 한 줄로 정의해도 괜찮을까요? 만약 제가 살고 있는 나라에도 비슷한 직업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제 마음을 표현하는 건 부끄러워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스스로 드러내지 못한 마음이건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하지만 당신이 자동 수기 인형의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편지를 쓸 수 있었듯이, 저도 제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마음을 전하는 직업은 어떤 의미 일까도 생각하게 되네요. 내 마음이지만 내가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자신의 마음은 편지 뒷면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각자 인형을 고용해 서로에게 전하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유려한 문장으로 포장하지만, 사실 서로에게 궁금한 건 문장 뒤에 숨겨진 서로의 진심이니까. 그래서 공주와 왕자가 서로의 문장으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진짜 마음을 주고받게 되지요. 전시하는 편지가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편지가 제 역할을 찾은 것처럼. 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는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어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당신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감정을 드러내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질 거라고 생각했죠. 바로 저처럼. 당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저는 답장을 합니다. 그 마음 잘 받았다고, 내 마음도 꼭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너무 늦기 전에 말이죠.


 이렇게 긴 편지를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요. 당신 덕분에 쓰게 된 편지 한 통이 씨앗이 되어 표현에 서툰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꽃을 피워내길 소망합니다. 모든 역경을 넘어 꽃을 피워낸 바이올렛 에버가든, 당신처럼요.


 제 마음이 닿기를.




바이올렛 에버가든 / 2018 / N시리즈

 


작가의 이전글 냉장고에 뭐가 너무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