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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Dec 30. 2020

버리기에 지치면,
남들 버리는 모습을 본다

오늘의 청소 - 먼지 털기

 이사를 전후로 정말 잘 버렸는데... 이제는 꽉 들어찬 수납장을 열어도 구석에 있는 물건을 꺼내기 바쁠 뿐 비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전엔 필요 없는 물건은 받지 않고 오히려 가져가라 했었는데, 지금은 다음에 쓸지도 모르니까 우선 받아둘까? 하는 마음에 서랍에 욱여넣는다. 그래서 여유가 있어야 할 청소용품 서랍엔 키우지도 않는 애견패드가 꽉 들어차 있다. 눈으로 힐끔거리며 서랍을 볼 때마다 투명한 수납장에 비치는 패드 뒷면에 눈을 슬며시 돌리게 된다. 쓸 거야, 곧 쓸 거야.


 버리는 일을 아예 멈춘 건 아니다. 사용한 지 오래된 베개 커버나 플라스틱이 바스러지는 빨래 건조대 같이 생활에 불필요한 고장난 물건들은 조금씩 조금씩 비워내고 있다. 버리는 일을 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버리는 물건들이 내 삶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이지 않기 때문. 큰 가구나 가전을 버리면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건만 나는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수납장 안쪽에 들어있는 물건들만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내가 잘 비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데다가, 호군도 그 방면으론 무심한지라 칭찬 좀 해주면 신이 날 텐데- 칭찬은커녕 또 버렸어?라는 되물음 뿐이니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그런 날엔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남들이 비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버리는 방법도 각양각색인지라 숫자를 정해놓고 비우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간을 정해놓고 매일의 미션을 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표가 있으면 비우는 일에 더 부지런해지는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버린 물건들을 사진 찍어 보여주고 과거의 자신의 반성한다. 생각 없이 그런 글들을 몇십 개씩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기분이 정리된다고나 할까? 난 왜 더 이상 버리질 못하고 정체되어 있나? 아직도 저렇게 서랍장이 꽉 차 있는데- 과감하게 버릴 건 버려버려. 하는 기분이 약 10% 정도 올라온다. 그 정도만 올라와도 조금씩 움직일 기분이 든다.


 버릴 것을 찾기 어려우니 오늘은 청소용품을 써서 없애버리자 싶다. 과거의 난 청소를 좋아했는지 일회용 청소용품들이 꽤 있는 편. 극세사 걸레를 빨아서 밀대질 열심히 하다, 빨래가 귀찮은 날엔 일회용 젖은 청소포를 이용한다거나 먼지가 쌓이는 게 싫어 일회용 먼지떨이도 있다. 오늘은 먼지 청소를 하는 걸로-


 플라스틱 막대에 먼지 청소포를 끼우고 앉아있는 책상의 모니터부터 한차례 훑는다. 그리고 선반장으로 향해 장식된 건담들을 요리조리 피해 바닥과 건담에 쌓인 먼지를 쓸고, 화분마다 순서를 정해 잎을 닦는다. 대충대충 먼지야 떨어져라 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책장과 선반의 먼지를 털고 난 뒤, 나무 블라인드를 닦아준다. 나무가 향한 방향을 따라 먼지 포로 쓸어내면 어느새 까맣게 되어버린 청소포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방마다 돌아다니며 블라인드를 쓸고, 청소포를 헤집어 깨끗한 부분을 드러나게 한 뒤 욕실장 위를 한번 쓸고 냉장고 위를 쓸고 에어컨 위를 쓸어준다. 그럼 난 또 새삼 이렇게 더러운 집에서 잘도 살았구나를 느낄 수 있는 것. (좌절)


 다회용 먼지떨이를 사는 것도 좋겠지만 청소도구 관리가 젬병인 내게 타조 깃털 먼지떨이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시커멓고 북슬북슬한 아이를 집 안 어디다 둬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그것을 제대로 털어 쓸 거라는 스스로의 확신이 없다. 먼지청소를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렇게 지친 기분이 들 때 한 번씩 집 안을 슬렁슬렁 돌아다니는 느낌으로 툭툭 털고 다니면 뭔가 뿌듯해지는 게- 나도 할 일을 했다 하는 기분이 드는 것. (어디까지나 기분의 문제라는 것이 함정) 정체 중인 비움은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진 않지만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조금씩 조금씩 해보자.


 버리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나라니. 

 한심하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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