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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Jan 18. 2021

'무지출데이'의 장점

오늘의 청소 - 소비

 새해 계획으로 무지출데이를 늘리자가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지출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일. 밖에 나가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이 그렇게 크지 않은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보름 정도를 지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지출데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소비를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서 내야 하는 공과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이건 지출인가 아닌가- 무지출데이로 잡아야 하는 건가 아닌가 기준이 흔들리기도 했고, 돈을 한번 쓴 날은 어차피 오늘 쓰는 날이니까 사고 싶은 거 다 사- 하는 마음이 되어서 칠렐레 팔렐레 주머니에서 돈이 새어나가기도. 그래서 오늘은 내 무지출데이의 기준과 그 장점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그건 다음에 다시-



무지출데이란?

               (의식주를 제외한) 생존과 관계된 지출이 아닌, 취향과 선택이 반영된 지출을 1원도 하지 않은 날


(의식주를 제외한) 생존과 관계된 지출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매월 일어나는 정기 지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종 공과금이나 휴대폰 요금, 대출 이자, 보험료 따위가 포함된다.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고 안 낼 수도 없고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를 안 낼 수도 없으니 내 의사와 상관없이 꼭 지출해야만 하는 돈을 생존과 관계된 지출이라고 봤다. 


 그럼 취향과 선택이 반영된 지출은 무엇이냐. 이건 의식주 포함이다. 쌀을 사는 건 생존에 포함된 지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어떤 쌀을 사느냐에 취향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철원오대쌀을 살 것이냐, 골든퀸을 살 것이냐, 신동진쌀을 살 것이냐 하는 건 내 취향의 문제. 쌀이 없으면 국수를 먹을 수도 있고, 시켜먹는 것도 방법이다.  또 이번엔 현미를 먹겠다 보리를 좀 먹어봐야지 하는 선택이 포함될 수도 있다. 옷도 구멍 나면 버리고 새로 살 수도 있지만, 옷이 뭐 한벌인가요- 수십 개의 옷 중 하나 구멍 났다고 꼭 하나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 건 아니다. 대체제가 충분히 있어 내 취향에 따라 살 수도 사지 않을 수도 있는 지출을 취향과 선택이 반영된 지출이라고 우선 기준을 잡았다. 지내보고 기준이 바뀔 수도 있지만-


 우선 좋은 건 정말 생각 없이 돈을 쓰질 않는다. 편의점에 택배를 보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왠지 아쉬워 초콜릿이나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곤 했었는데, 오늘은 무지출데이로 해야지 마음먹으니 초콜릿도 음료수도 아쉽지 않다. 또 인터넷을 열심히 구경하다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는 세제를 보고 마음이 혹해 온라인으로 하나 주문해볼까 싶다가도 시계를 보고 늦은 시간이면 지금까지 내가 돈을 안 썼는데- 지금 여기서 결제해 버리면 무지출데이 기록이 깨지는구나 싶어 지출을 미루게 된다. 


 그래서 난 의도치 않게 사고 싶은 물건의 리스트를 적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난 생각나면 그때그때 장바구니에 담고 최소 구매 금액을 맞춰 결제버튼을 눌렀는데 지금은 리스트에 우선 적어두고 한날 다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매를 미룬다. 구매를 다음날 혹은 그다음 날로 미루고 리스트를 살펴보면 굳이 내가 이걸 사야 하나? 하는 몇몇이 보인다. 매일매일 리스트를 적어 리스트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관심이 식어 더 이상 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항목들도 눈에 띈다. 분명 예전 같으면 바로 샀을 항목들인데 하루가 지났다고 이렇게 짜게 식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파먹게 된다. 마트를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모 사서 식사를 준비하곤 했는데, 소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 마트 갈 일이 없고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날치알을 꺼내 계란찜을 하고, 감자에 싹 나기 전에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감자전과 감자 샐러드를 만든다. 시골집에서 가져와 냉동실에 박혀있던 청국장을 꺼내 김치와 함께 찌개를 끓이며 방치된 애호박 반쪽도 슬쩍 넣는다. 원래 청국장 재료라는 게 어디 있나- 내가 넣으면 그게 바로 요리지-하는 생각으로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식품이 없도록 어떻게든 소비한다. 예전엔 그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사서 요리하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냉장고를 뒤져 요리를 만들어낸다고 할까. 먹는 일에 대한 나의 관심과 집중이 사라져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무지출데이를 늘리겠다고 마음먹으며 습관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이고,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로 보여 마음이 좋다. 또 달력에 늘어가는 무지출데이 표시를 보면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더 열심히 해서 좀 더 많은 날 이 표시를 하고 싶어 진다. 새해가 되어 지키고 있지 못한 계획도 있지만, 이렇게 잘 지켜지고 있는 계획도 있으니 왠지 올 한 해가 나에게 더 기쁜 해가 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고민스러운 부분이나 좋지 않은 점도 생겼다. =( 

 이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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