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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Jan 13. 2021

읽고 싶은 책만 남깁니다.

오늘의 청소 - 책 비움

 온라인 중고서점에 엄청 책을 보낸 것 같은데- 아직도 책장엔 책이 가득이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만 책장에 두고 싶은데, 그런 책은 몇 권 남아있지 않고 중고서점에서도 당근에서도 매입하지 않는 책들만 남아버린 듯하다. 한때는 책장에 책이 쌓여있는 것만 보더라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책장을 보면 답답한 느낌이 먼저다. 내가 언젠가 읽기 위해 사둔 책들이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남아있는 책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소설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공부를 하겠다고 남겨놓은 책도, 종교 서적이나 실용서도 있다. 앞에 메모와 함께 선물 받은 책은 팔기 어렵고 버리기엔 왠지 내 이름이 버려지는 것 같아 가지고 있게 된다. 나중에 작가님을 만나게 되면 꼭 사인받아야지 하는 책 한두 권도 남아있다.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게 될 기회가 있다면 책을 들고 종종 달려가 줄을 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들.


 가지고 있는 만화책도 제법 많았는데 당근에서 저렴하게 많이 판매했다. 근처 만화카페 사장님이 득템 해가셨다.(올리는 족족 구매하시겠다고 하셔서 여쭤봄) 한창 동네에 만화대여점이 흥했을 때 빌려보았던 아이들을 폐점할 때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그 만화책을 보면 괜히 만화대여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는데... 그래서 떠나보낼 때 그 시절이 그리워 아쉬웠나 보다.


 물론 판매하지 못한 만화책들도 있다. 아- 근래 이건 한 번도 안 읽었어하고 팔아야겠다 올렸는데 팔기 전에 한번 다시 읽어볼까 하고 펼쳤다가 하루가 지나버렸다. 울다가 웃다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결국 판매하지 않기로. (내 눈에서 지금까지 눈물을 뽑아내는 만화라니. 소중하다) 원피스는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내용이 저러나 싶어서 다 팔아버리고 싶은데- 100권이 넘는 책을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아 섣불리 용기를 낼 수 없다. 


 책장에 진짜 놓고 싶은 책 20권만 남기는 게 내 목표. 나에게 위로를 주는 책, 즐거움을 주는 책,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책,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할 수 있게 하는 책들로만 책꽂이를 채우고 싶다. 스무 권만 남길 수 있다면 저 커다란 책장도 더 이상 필요하진 않겠지. 책장을 비우면 빈 벽에 뭘 할 수 있을까. 프로젝터를 쏴서 영화를 볼 수도 있을 테고, 앵글을 맞춰 허리 높이의 기다란 수납장을 만들어도 좋겠다. 책장만 바라봐도 다양한 생각이 떠오르는 게 즐겁기만 하다.


 한 권씩 한 권씩 책을 들고 고민한다. 한 달 내 읽을 책인가? 상반기 내 읽을 수 있나? 올해 안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읽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책장에 둔다. 그러나 다시 읽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과감히 옆으로 빼둔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 맞고 내가 일 년 후에 이 책이 필요하다면 그땐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될 테니까. 굳이 지금 이 책을 내가 안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한번 골라내고 한 달 뒤 다시 책장에서 책을 골라내고 삼 개월 후에 다시 골라내야지. 그리고 일 년 후엔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책만 남기고 나머지는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보내줘야지.


 책장을 비우는 건 나에게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그 수많은 책꽂이들을 모두 다 채우지는 못하지만 텅 빈 책꽂이를 마냥 둘 수만은 없는 일. 부지런히 소품들을 찾아 올려두기도 하고 액자나 인형을 슬며시 가져다 놓기도 한다. 언젠간 저 장식품들도 비워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소소히 채워진 장식품들을 올려놓고 가지고 있을까 말까를 고민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지 누군가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지금 내가 물건을 바깥으로 꺼내는 일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싶은 책만 남기는 것도 내게 더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전시된 책이 아니라 평생 할 책만 남기기 위한 작업.

오늘도 즐겁게 책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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