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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Jan 20. 2021

'무지출데이'의 단점

오늘의 청소 - 소비

무지출데이란?

          (의식주를 제외한) 생존과 관계된 지출이 아닌, 취향과 선택이 반영된 지출을 1원도 하지 않은 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저녁을 준비하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소소한 생활에 무지출데이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만은, 무지출데이를 스스로 정함으로써 내 생각 없는 소비 습관을 '절제'하게 되었다. 물론 새해가 시작하고 보름 정도의 이야기인지라 올해의 끝 무렵에는 다시 무절제한 지출을 즐기는 인간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수확이다. 


 오늘은 무지출데이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돈을 쓰지 않으니 그리고 스스로의 습관에 변화가 생겼으니 좋은 점만 있을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단점이 드러난다. 그중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한번 구매할 때 절제의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마트 쇼핑을 가면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고, 먹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들을 한두 개 골라 담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그런데 무지출데이를 만들고 나선 지출하지 않을 날을 생각하며 왠지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떠올린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아도 왠지 필요할 것 같고, 지금 당장 갖고 싶은 건 아니지만 왠지 갖고 싶을 것만 같은 아이템을 보면 장바구니에 집어넣게 되는 것. 그렇게 생각 없이 한 개 두 개 넣고 돌아와 집에서 정리를 하기 시작하니 내가 이걸 왜 샀지? 하는 아이템들이 눈에 보인다.


 은근 호군의 소비를 기대한다. 나는 돈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일 뿐. 나와 함께 사는 호군은 그런 다짐을 하지 않았으니 호군이 돈을 쓰는 것은 자유다. 오늘 뭘 먹고 싶어서 이걸 사 왔어, 난 아프니까 이런 거 필요해- 하며 하나둘씩 집에 가져오는 물건들. 전에 같으면 이그 인간아-하며 등짝을 팡팡 두드려 맞을 아이템을 가지고 들어와도 요즘의 난 마음이 관대하다. 오호- 이런 걸 샀어? 이게 먹고 싶었구나? 하면서 등짝이 아니라 엉덩이를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반찬이 마뜩잖은 날에 마트에서 굴이라도 한 봉지 사 오면 그의 소비를 응원하게 된다.


 하루의 끝에 자책하는 내가 있다. 오늘 잘 참았는데, 마지막에 치킨만 안 시켰어도 무지출데이였는데- 하며 스스로를 탓하는 나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하루 종일 한 푼도 안 썼는데 저녁밥상 차리기 귀찮아서 치킨을 주문하고야 마는 나님을 보며 하루 종일 내가 이룬 성과(무지출)를 날렸다고 생각하니 급 현타가 온다. 이 마음을 잘 구슬리고 다스려서 내일의 소비는 좀 더 알차게!라는 다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난 바보야, 난 멍청인가, 왜 나는 그게 그렇게 귀찮았을까,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몇 개 꺼내면 될 일을... 하며 이리저리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한심한 나를 보려고 시작한 일이 아닌데, 어느 날의 끝엔 한심해지는 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지출데이'는 내게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 한번 살 때 몇 가지 아이템을 더 집어넣는다고 해도 매일매일 작은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적다. 그리고 내가 지금 충동구매를 하고 있다는 걸 머릿속으로 인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생각보다 사지는 않게 된다. 잘 참고 있는 나에 대한 보상으로 1-2개의 아이템을 그것도 생활에 필요한 아이템을 산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편. 호군의 소비 역시 원래 샀던 사람이고, 잔소리가 줄었으니- 호군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겠지? 하지만 나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해서 막 사들인다면 그땐 한마디 해줄 생각이다.


 자책을 멈추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정말- 돈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돈을 쓰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A라는 장소로 물건을 보내야 하는데 주소 기입을 잘못했다던지, 구매하려고 한 물건의 사이즈를 가늠하지 못해 다시 재구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던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들.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소비하지 않고 넘어갔을 상황인데 내 부주의로 주머닛돈이 새어나가는 날은 정말 자책을 멈추기 힘들다. 그래도 난 이너 피스를 외치며 마음을 추스르려 한다. 나에겐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많은 날을 '무지출데이'로 보내야 하기에 오늘의 자책은 의연히 넘겨야지.


 가장 좋은 건 달력에 기록된 무지출데이가 늘수록 나의 즐거움도 커진다는 것이다. 괜히 잘한 내가 뿌듯하고, 칭찬해주고 싶고, 마음에 든다. 이번 달도 잘 살고 있구나, 내 시작이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하고 싶어 진다. 매일매일의 작은 습관이 언젠가 변화될 나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 기대된다. 이렇게 몇 달 후 변화된 나를 돌아본다면 그것 또한 기쁘겠지. 


 그때 다시 디벨롭된 나의 무지출데이에 대해 기록해야지. =)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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