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소 - 다림질
미니멀 라이프 관련 카페에 들러 사람들의 글을 보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버리거나 재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자극을 받아 그날은 뭐든 정리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페에서 생각 없이 글들을 클릭하는데 다리미판을 버린다는 글을 봤다. 엇... 다리미판? 이건 좀 세다 싶었다. 집에서 다림질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남방 정도는 다림질을 해야 봐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다리미판이 없이 다림질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았다. 다리미판이 없으면 어떻게 다림질을 하나요? (두근두근) 정말- 나도 다리미판을 버리고 싶었던 1인으로써 세상 꿀팁을 기대하며 답을 기다렸다. 띵동- 알람이 울리고 댓글이 달렸다.
'스팀다리미를 이용해요'
아... 그런 물건도 있구나. 스팀다리미? 그럼 나도 지금 다리미를 버리고 스팀으로 갈아타 볼까? 그냥 걸어놓고 손으로 몇 번 가져다 대면 슥슥 다림질이 되니 세상 편한 거 아닌가? 스팀다리미 하나를 사면 다림판과 지금 사용하는 다리미 둘 다 처분할 수 있는데. 2개를 버리고 1개를 얻으니 숫자로 따지면 결국 더 미니멀 해지는 거 아닌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세탁 후 매번 다림판을 꺼내고 분무기에 물을 받고 다리미 코드를 꽂고 다림질을 마친 뒤 반대로 정리해 넣는 일을 떠올리면 그게 더 효율적일 것만 같다. 당근에 다리미와 다림판을 팔고 스팀다리미를 하나 사면 되겠다- 알뜰하네!
검색창을 열고 스팀다리미를 검색했다. 저렴한 물건부터 고가의 물건까지 사이즈도 크기도 색상도 다양하다. 다들 너무 좋고 너무 편하다고 칭찬 일색이다. 그렇게 편하고 좋은 물건 나도 써봐야지- 생각해 적극적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너무 저렴한 건 빨리 고장 날 것 같아서 패스, 너무 비싼 건 부담스러워서 안되고 적정한 가격으로 이리저리 검색하고 있으려니 그 크기와 부피가 부담스럽다. 한 손에 쥘만한 사이즈는 물을 계속 보충해줘야 할 것 같고 물을 많이 받아 사용하는 녀석들은 너무 크다. 그리고 바로 우리 집을 떠올렸다. 이렇게 큰 스팀다리미를 놓을 장소가 우리 집에 있나?
바로 현실 자각이 되었다. 작은 집으로 이사오며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지금 난 우리 집에 쓸만한 물건이 있음에도 뭔가에 홀려 지금 내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찾고 있었다. 와- 난 꽤 욕심이 없고 절제하는 스타일의 소비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이렇게 신이 나서 마음이 들뜰 줄이야.
물건이 놓일 장소를 생각하고 작은 우리 집을 떠올리면 소비욕구가 사라진다. 내가 스팀다리미를 들여놓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집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수납장 하나는 버리고 나서 구매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수납장을 버리려면 그 안에 든 자질 구래 한 물건들을 다시 어디론가 수납해야 한다. 그 많은 걸 어디로? 생각만 해도 깜깜하다. 사는 건 쉽지만 버리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구매를 포기한다.
아쉽지 않냐고? 전혀- 전혀 아쉽지 않다. 그 물건이 내게 와 줄 기쁨보다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줄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물건을 대체할 다리미판과 다리미는 서랍에 예쁘게 잘 숨겨져 있다. 필요할 때만 꺼내어 사용하고 다시 서랍에 넣으면 깔끔하게 정리되니 작은 사이즈의 다리미가 지금 내 생활엔 더 어울린다. 2개를 버리고 새물건 1개를 얻을 수 있으니 더 미니멀해지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그저 소비를 하고 싶은 내가 만들어낸 괴상한 이론일 뿐.
나는 다림질만 할 수 있으면 되지, 다림질 이외의 어떤 것은 필요하지 않다. 조금 불편해도 내가 가진 물건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일주일에 셔츠 3-4장 정도 다림질하는 일을 더 편하게 하겠다고 스팀다리미를 욕심낸 나를 반성한다. 다림질이 싫으면 다음엔 다림질이 필요하지 않은 소재의 옷으로 구입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포기할 수 없으니- 다림질을 기꺼이 즐기면 될 일. 기꺼이 사용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