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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Feb 16. 2021

지출을 미루는 소비습관

오늘의 청소 - 소비습관

 "휴지 거의 다 썼는데, 하나 사놔야 하는 거 아니야?" 

오랜만에 들른 마트에서 호군이 카트를 끌고 지나며 휴지 코너 앞에서 멈춘다. 두루마리 휴지가 5개쯤 남았을까-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니, 호군이 30개짜리 휴지를 하나 들고 온다. 

 "아아- 잠깐- 멈춤- 휴지는 제가 알아서 살게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갸우뚱하는 호군. 휴지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온다. 왜? 거의 다 쓰지 않았어? 어, 맞아. 근데 휴지는 내가 인터넷으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떨어지기 전에 채워놓을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가능한 집에 물건을 쌓아두지 않으려고 하는 나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은 즉시 채워 넣으려는 호군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즉시 사려는 그와 제지하는 나. 지금 우리 집엔 다섯 개의 두루마리 휴지가 있고, 휴지 하나를 사용하는데 5일 정도라고 생각하면(맞는지는 모르겠다) 못해도 20일은 지금 가지고 있는 휴지로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이니. 휴지가 하나 정도 남았을 때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휴지 놓는 선반에 다시 채우면 될 일이다. 


 어차피 사야 할 물건이고, 어차피 쓸 돈인데 그걸 지금 쓰나 20일 뒤에 쓰나 무슨 차이가 있지? 생각났을 때 사고 넉넉하게 채워놓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지 않아? 생각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질문 중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할 수 있다. 넉넉하게 채워놓는 건 오히려 부담스럽다. 들어갈 공간도 없는데 그 커다란 부피의 휴지를 좁디좁은 베란다 바닥에 방치하고 못 본 체하는 일이 더 힘들다. 그 휴지를 눈에 보이지 않도록 어떻게든 정리해 쑤셔 넣는 내가 보이기에 처음부터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나를 위하는 길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다. 어차피 사야 할 물건이라면 가능하면 내가 선택하고 싶다. 마켓에 일렬로 늘어선 휴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관심 있게 지켜보던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 개인적인 휴지 취향이라고 하면 가능한 향기는 나지 않고, 먼지가 적으며, 얇지 않은 도톰한 휴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 세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한번 구매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제품은 대나무 휴지. 90일이면 25미터까지 자라 지속적인 재배와 생산이 가능하다는 대나무로 만든 휴지를 한번 써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하루 이틀이면 도착하리라.


 어차피 쓸 돈? 이건 잘 모르겠다. 어느 집이든 무조건 두고 사용하는 두루마리 휴지인지라 내가 구입하기도 쉽고, 다른 사람이 선물로 주기도 쉬운 품목이다. 집들이 선물 1순위가 두루마리 휴지인 것처럼. 우리 집에서 집들이를 할 계획이 있다거나 누군가 선물을 하겠다고 나에게 미리 언질을 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필요한 게 없냐고 묻는다면 두루마리 휴지나 사줘-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


  그럼 지금 당장 사는 것과 20일 뒤에 사는 것의 차이는? 우리 집 생활비의 규모가 달라진다. 2-3만 원짜리 두루마리 휴지 하나로 생활비의 규모까지 운운하는 건 조금 오버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쟁여두고 사용하는 물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소비하는 생활비는 커지기 마련이다. 같은 마음으로 냉장고 속 식품들도 쟁이고, 통조림이나 깡통 햄도 쟁이고 라면이나 세제 같은 생필품도 쟁이게 된다. 그렇게 쌓아두고 넉넉하게 지내며 내가 구매한 제품들을 모두 소비할까? 오히려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거나 사놓은 줄 까맣게 잊고 다시 구매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분명히 사서 어딘가 잘 두었는데, 너무 잘 둔 탓인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그렇게 생활비가 조금씩 줄어든다. 지출을 최대한 미루니 소비규모가 달라졌다. 이렇게 생활하며 물건이 똑 떨어진 경우는? 물론 있다. 간장을 사야 하는데 깜빡 잊고 구매하지 않아 요리에 사용할 간장이 없다. 그럼 외투를 하나 걸치고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마트에 다녀온다. 으이그, 미리 대형마트에 갔을 때 샀으면 1000원 저렴하게 샀을 거 아냐! 생활비가 줄기는커녕 이렇게 하나 두 개씩 사다가 오히려 씀씀이만 더 커지겠네! 누군가 잔소리할 수 있지만, 그 1000원으로 난 공간의 여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련다. 간장 한병의 크기가 후추통만 한 것도 아니고 한번 구매하면 2리터쯤 되는 커다란 병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우리 집 어디에다 둬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제법 큰 동네 마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마트에 제대로 된 물건을 구비하고 있지 않다거나 종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 대형마트에서 어쩔 수 없이 쟁여야 할 수밖에 없는 분들도 계실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 미루기를, 더딘 구매를 추천한다. 예비 샴푸가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새 샴푸를 당장 구매해 저장해 둬야겠다가 아니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샴푸가 반밖에 혹은 1/3밖에 남지 않았으니 새 샴푸를 하나 사야겠다 정도로. 그리고 마트에 갔을 때 눈에 띄는 상품을 적당히 손에 집어오는 게 아니라, 어떤 샴푸가 있는지, 비슷한 효과를 가진 다른 제품은 없는지, 내 취향은 혹은 가족의 취향은 어땠는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고민하고 고른다면 훨씬 더 만족하며 물건을 손에 쥘 수 있으니까. 


 가장 좋은 상태의 제품을 가장 좋은 타이밍에 즐겁게 사용하는 방법. 지출을 미루는 소비습관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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