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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Feb 24. 2021

명절 후 일상 회복하기

오늘의 청소

 어어? 왜요? 에엣? 감사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와우.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 같은 돈 덕분에 명절도 명절에 끼어있는 호군 생일도 조카 세뱃돈도 챙겨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주머니가 열리기 시작하자 물꼬가 트인 것처럼 돈 쓰는 일이 재미있다. 생일맞이 외식도 즐거웠고, 길을 걷다 사 먹는 커피 한잔에도 기분이 좋다. 돈을 쓰는 건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짜릿해- 를 몸으로 만끽하며 2월을 보낸 듯. 일상 속 무지출데이를 늘리는 게 나의 목표였는데, 지출데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 몸 쓰는 일보다 돈 쓰는 일이 많아졌다.




 가만히 앉아 거실을 둘러본다. 탁자 위에 놓인 약병, 손톱깎이 케이스, 반듯하게 접힌 영수증들, 싱크대 위엔 식재료가 자리를 잡았고 행주는 노랗다. 냄비와 프라이팬이 모두 가스레인지 위에 에어프라이어를 덮어놓았던 수건은 구석에 처박혀있다. 내가 정신을 놓고 지내는 사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하나씩 하나씩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때그때 쓰레기통에 들어갔어야 할 노란 고무줄들은 쌓여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배달 음식을 시킬 때마다  따라온 플라스틱 수저들로 서랍은 터지기 직전이다. 아 진짜 떡볶이는 왜 이렇게 많이 시켜먹은 거야.


 매일 특별한 사건은 없어도 나름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는데, 명절을 기준으로 소비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외식과 배달음식이 잦아진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손에 꽁돈이 갑자기 주어지고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며 머릿속에서 다짐한 올해 계획은 스르르 사라졌다. 주어진 돈을 감사하며 평소의 생활습관에 맞춰 지냈으면 우리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다이어트에도 치팅데이가 있는데, 소비에도 치팅 주간이 없는 게 말이 되냐- 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부지런히 이 주간 먹고 논 결과는 우리 집의 남의 집화다. 하하. 우리 집이 매우 낯설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물건들의 자리를 잡아주던 내가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에 넋을 놓아버린 사이 물건들은 슬금슬금 나와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 주간이나 그렇게 지냈다는 게 참 말이 안 된다고 하고 싶다가도 결국엔 정신을 차린 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내 차애와 차애의 음악들로 지난 이 주간의 세상이 채워져 다른 것들은 싹 잊어버렸는데- 동영상을 볼만큼 본 탓인지, 이제라도 집이 더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다행이다.


 쓰레기통을 거실로 들고 와 우리 집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을 모두 집어넣는다. 영수증 쪼가리들, 사용하지 않을 노란 고무줄, 종이 쓰레기들 중에서 플라스틱 부분은 모두 분리하여 각자 봉투에 집어넣는다. 명절! 하니 생각난 냉동실에 들어있는 얻어온 갈비도 꺼낸다. 오늘 저녁 당첨. 프라이팬은 싱크대 안으로 밖에 나와있는 식재료는 오늘 저녁에 다 먹어치워 버리겠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잡동사니들을 모두 서랍 안으로 숨기고 반납해야 할 책을 가방 안에 넣는다. 책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고 여기저기서 잔뜩도 꺼내와 거실에 쌓아둔 게 언제부터였는지.


 집 안을 정리하며 후회가 밀려온다. 지난 이 주간 치팅 주간이었다는 의식이라도 있었다면 좀 더 잘 쓰고 잘 놀았을 텐데. 너무 생각 없이 시간만 흘려보낸 탓에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마음껏 즐기지도 못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정신 차린 이 순간 내게 드는 생각은,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집 안을 더 더럽히고 정리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막 더럽게 지내는 거 나 잘하는데!!! 왜 난 뼛속에 조금 남아있는 죄책감으로 몸을 움직였나!! 나님아, 왜 그랬니!!! 너 사실 더 늘어질 수 있었잖아!!!!!




 그래서 결심했다. 의식 있는 치팅 주간을 만들기로. 매일매일 부지런히 사는 일상도 좋지만 한 번쯤 제대로, 더럽게 지내며 방탕하게 사는 주간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듯하다. 그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두 달에 한번? 세 달에? 아니, 그런 건 삘이 딱,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번 주다- 이번 주는 제대로 해보자 하는 순간이. 여하튼 지금은 아니다. 나 정신 차렸다. 마저 정리하자.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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