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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pr 12. 2021

봄이 가려는데, 난 왜 아직 겨울...

오늘의 청소 - 겨울 이불과 겨울 옷

 3월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달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겨울 점퍼를 놓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들고 다녔는데 이젠 점퍼가 무색하게 길엔 산수유와 목련,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었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벚꽃이라니, 말도 안 돼 싶다가도 한낮의 따스한 햇살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히 고이곤 한다. 3월 말인데도 아침 출근길은 엉덩이가 차고 꺼내놓은 손이 시리다. 나이 탓인가 날씨 탓인가... 날씨 탓이라고 해둬야지.


 저 한문단을 써놓고 달이 지났다. 지금은 4월. 무슨 정신으로 한 달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내 정신과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지나고 생각하면 내가 뭐했나 한탄스러울 뿐. 이제부터라도!라고 다짐해보지만 얼마나 갈까. 


 우리 집은 아직 겨울이다. 아직 두터운 겨울용 구스 이불을 덮고 밤마다 이불이 덥다며 발로 차냈다가 덮길 반복한다. 이제는 쪼옴, 겨울이불일랑 접어 장에 넣어두고 봄여름 이불을 덮었으면 하는데- 봄여름 이불이랄게 우리 집엔 없다. 근 20년간 덮었던 차렵이불을 이사 오면서 떠나보냈기 때문. 멀쩡한 이불 왜 버리냐고 호군이 물었었는데... 20년 동안 제대로 볕에 널어 말린 적도 없고 가끔 빨래 정도만 했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불장 안에서 보낸 터라 곰팡이 냄새가 콤콤했다. 봄볕에 잔뜩 말려 덮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건강한 집을 만들고 싶었고, 얇은 오리털 이불도 하나 가지고 있어 버려도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들로 오리털 이불이 사라지고 (돌아와라 이불이여!) 겨울이불에서 여름 이불로 점프하게 생긴 지금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이불을 되찾으러 가든지 새로운 이불을 구매하든지이다. 


  새로운 이불을 구매할까 싶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침구 사이트에 들러 상품을 검색했다. 살짝 더운 계절에도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있으면 편안하게 느껴져 적당히 두께가 있는 차렵이불을 하나 사볼까 둘러봤다. 그러나 이미 가을 겨울은 지나고 봄 여름을 맞는 시즌인지라 두꺼운 이불은 없고 여름용 차렵만 올라와있다. 두꺼운 차렵을 할인 판매하고 있긴 하나 모두 싱글 사이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카카오톡 상담을 눌렀다. 두꺼운 차렵이불 퀸 사이즈를 구매하고 싶다고- 답변은 예상과 같았다. 현재는 여름용밖에 구매할 수 없다. 아...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추가 답변이 왔다. 이불 커버에 얇은 솜을 덧대 빨래가 쉬운 차렵이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오- 나쁘지 않았다. 그 이불엔 다시 두터운 이불을 겹쳐 넣어 도톰하게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잠시 집을 비운 오리털이 돌아왔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구나! 추우면 오리털을 넣어서, 더우면 솜을 덧댄 차렵이불로- 


 가능한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지양하고자 하지만, 집과 생활에 투자하는 건 비싸더라도 망설이지 않으려고 한다. 외식 한번, 밖에서 사 먹는 커피 한잔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생각을 곱씹지만 몇십만 원이나 하는 이불은 충분히 곱씹고 곱씹어 생각했기 때문에 구매 버튼을 누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이불이 있어서 나와 호군이 누릴 기쁨과 만족이 더 크다는 걸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주문 제작을 하는 곳이라 배송까지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린다고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난 구스 이불을 덮고 밤마다 이불을 들췄다 덮었다 하겠지만 일주일이 무슨 문제가 있으랴. 이렇게 될 때까지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을 반성할 따름이다.


 그다음은 겨울 옷 정리다. 스웨터 제품은 울샴푸로 빨아 정리해 두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겨울옷이 튀어나온다. 다 정리해서 정리함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일을 다시 하려니 도무지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 이번 기회에 안 입는 겨울 옷도 제대로 비워보자 싶은 마음에 정리함을 다시(!!) 꺼내고 옷장에 여기저기 걸려있던 옷들을 꺼내 거실 바닥에 쌓는다. 이 중에서 내가 이번 겨울에 입은 겨울옷은 고작 5벌이 채 되지 않을 텐데- 다음 겨울에 다시 입지 않을까 싶어 보내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이번 겨울에 한 번도 안 입었는데- 다음 겨울은 뭐 얼마나 입겠다고! 하는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래, 이번 겨울에 한 번도 안 입었는데... 안 입은 옷들 중 반은 우선 보내는 게 맞겠다.


 이리저리 골라 타포린 가방에 내 옷과 호군 옷, 목도리와 모자 등을 욱여넣고 호군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혹시 버리면 안 될 옷을 버리진 않을까 싶어서 확인해두라고 하고 싶었으니까. 호군이 좋아하는 옷을 하나 슬쩍 넣어두긴 했는데 그 옷은 이번 겨울에도 지난겨울에도 입지 않았던 옷이다. 보풀이 일어나고 옷감이 헤지고 얇아져 그 옷을 입고 출근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기함을 하고 벗겨냈던 스웨터다. 집에서만 입으라고 했는데 집에선 맨투맨이나 반팔 티셔츠 차림이지 그 옷은 꺼내질 않으니 이제는 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역시나 가방을 뒤적이던 호군이 그 스웨터를 찾아내곤 입을 댓 발 내민다. 버릴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럼, 입던지!! 하고 한마디 꺼냈더니 그날 저녁 산책 나가는 길에 그 스웨터를 꺼내 입는다. 무려 봄바람이 살랑살랑한 바람막이 하나로 땀이 흐르는 이 날씨에 그 스웨터를 기어이 입고야 만다. 그래 내가 졌다. 올 겨울도 그대의 승리다.


 제법 괜찮은 옷들도 끼어있는지라 당근 마켓에 올려보기도 했지만 판매로 이어지진 않는다. 온라인 중고 판매 업자 분을 부르고 싶지만 그러기엔 옷량이 너무 적다. 몇십 킬로는 나가야 몇천 원을 받던데- 이건 십 킬로는 될까? 근처 의류수거함으로 고이 보내는 수밖에... 알뜰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약간의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한순간이다. 이 옷을 처리하며 내가 느끼는 해방감만 생각하자.


 오늘 저녁- 난 이 타포린 가방을 비우러 간다. 이 가방 하나를 비우고 내년엔 괜찮은 스웨터를 하나씩 사야지. 20년 된 이불을 버리고서야 겨우 새 이불을 맞출 수 있었던 것처럼, 옷도 비워내야지만 그나마 괜찮은 옷 한 벌이 생길 수 있으니까. 


 벌써 내년 겨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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