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소 - 봄나물 비빔밥
어떤 저녁식사를 했느냐에 따라 아침에 식욕이 넘치기도 하고 점심이 훌쩍 지나도록 배고프지 않기도 하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강제 산책을 하고 있는 중이라 식욕이 넘치는 편. 먹어도 먹어도 허전한 이 기분을 뭘로 채울 수 있으려나-
아침엔 집에 있는 빵이나 두유 등으로 간단히 먹으려고 한다.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한 끼보다 빨리 이 허기를 없애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즐겁다. 그래서 집엔 식빵이나 머핀, 베이글 같은 빵류가 떨어지지 않고 냉동실에 채워져 있다. 물론 입 짧은 나를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잔뜩 사다 놓고 먹으면 좋겠지만 빵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버리기 일 수 인지라 가능한 번갈아 가며 소량씩만 사놓는다. 집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축복이구나.
저녁은 좀 다르다. 하루 중 호군과 내가 함께하는 유일한 식사시간이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챙겨 먹으려고 한다. 그래 봤자 밥과 국 혹은 찌개에 반찬 한두 가지 정도의 소박한 식사이지만 이 정도의 준비도 가끔은 벅찰 때가 있으니 나름 노력하고 있는 것. 시댁에서의 식사는 (대부분 행사 때 모여서인지 몰라도) 으리으리 상다리 부러지는 식사이기도 하고, 음식 솜씨 좋으신 어머님 밑에서 자란 호군인지라 입맛이 까다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취생활을 하며 견뎌낸 시간이 있어서인지 그럭저럭인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
어렵지 않은 대부분의 밑반찬은 만들어 먹지만 나는 손을 댈 수 없는 장르의 반찬이 있다. 요즘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푸릇푸릇한 봄나물들. 손대면 안 되는 장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트에 가면 손이 자꾸 움찔거린다. 쑥도 냉이도 두릅도 장바구니에 털어 넣고 싶어 괜한 나물 봉지만 들어다 놨다 하는 것. 그러나 나에겐 그런 나물들을 손질하고 뭔가를 만들어낼 재주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콩나물 한 봉지도 손질하기 어려워 세 번 씻어 나왔다는 콩나물을 집어 드는 나인데- 흙도 꽁지도 살아있는 아이들을 다듬을 재주가... 과연...?
요리는 할수록 느는 거라니 마음먹고 도전해도 좋겠지만, 나물 요리는 들이는 공수에 비해 결과가 너무 소박하다. 하루 종일 씻고 다듬어 삶거나 볶아내면 고작 한 줌도 되지 않는 양이라 내가 하루 종일 뭐한 거지- 싶다. 그럼 양을 좀 늘려 넉넉하게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지 생각.... 하지 말자. 나물은 두고두고 먹는 음식이 아니다. 처음 한 끼는 식탁의 메인을 차지하며 사랑받겠지만 그다음 날에도 식탁에 오를 수 있을지 미지수일뿐더러 이삼일이 지나면 나물은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내가 한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날들이 더 많으니까.
봄나물이 먹고 싶은 이 계절엔 반찬가게에 들른다. 씻어내고 다듬어 맛있게 볶거나 무친 그 나물들을 신중하게 4팩 혹은 5팩 골라낸다. 좋아하는 진미채 볶음이나 고들빼기김치가 유혹해도 나물을 먹기로 한 날은 꾹 참고 나물만 고른다. 따뜻한 밥 위에 좋아하는 나물을 잔뜩 올리고 참기름에 고추장 한 숟가락 얹어 슥슥 비벼먹는 상상을 하면 고르는 일이 어렵지 않다. 비빔밥 재료로 어울릴만한 녀석들만 골라내면 되니까. 방풍나물도 참나물도 손에 쥐고 고사리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넣는다. 난 고사리가 왜 이렇게 좋을까-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한두 끼 넉넉히 먹을 나물반찬을 살 수 있는 요즘 세상에 감사하면서도 집으로 가져오는 플라스틱 반찬 그릇이 마음에 쓰인다. 반찬가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나는 그것들을 가져와 접시에 옮겨 담아 식사하고 남은 나물들은 다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나오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씻어 재활용품으로 내놓아야지. 하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반찬의 종류와 원산지, 가격이 붙은 스티커를 제거해야 재활용품으로 사용이 가능하니- 그 스티커를 일일이 떼는 일까지 생각하면 이 일도 만만치는 않은 편.
큰 플라스틱 통을 하나 들고 가 거기에 반찬을 담아줄 수 있냐고 여쭤봐야겠다.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반찬을 옮겨 담는 수준이라면 쓰레기 니가 버릴래 내가 버릴까 수준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그램수를 달아 반찬만 옮겨주는 반찬가게도 생기지 않을까? 지구에도 선하고 내 귀찮은 일도 하나 덜 수 있는 방법이라 꼭 그랬으면 좋겠네!
이야기가 살짝 옆으로 새긴 했지만, 결론은 봄엔 나물이라는 것. 이 계절에 양껏 챙겨 먹읍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