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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Sep 07. 2021

당근에서 만난강아지 2

-알레르기도극복할 수 있다고?

 강아지를 쓰다듬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저쪽에서 남녀 한쌍이 다가온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당근에 글을 올리신 분이다. 글을 올리고 주변에서 찾아와 방석이며 장난감이며 옷이며 이래저래 챙겨주고 가셨다고 한다. 딸랑딸랑 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온 내 손이 부끄러웠다. 강아지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듯 우리와 있을 때완 달리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어 건네시며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 너무 추우니까 임시보호라도 하고 싶긴 한데... 

  저희가 임시보호를 한다고 한들 데려갈 사람이 금방 나타나긴 할까요? 


 강아지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내가 임시보호라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서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내가 덜컥 키우겠다는 말은 못 하겠고 추운 겨울 동안 비와 눈을 피하는 정도로 데리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 저희도 계속 맡아 키워주실 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포인 핸드에 올리기도 했고, 정 맡아줄 데가 없으면 수원에 있는 아는 애견카페에라도 보내야 하나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저희 집으로 데려가면 좋겠지만 저희 건물에서 강아지 키우는 건 어렵기도 하고 마침 재계약해야 하는 시점이라 섣불리 데려갈 수가 없어요.


 아. 애견카페. 나도 조카들을 데리고 종종 방문하긴 했었지만 과연 이 아이에게 그 방법밖에 없는 걸까. 그보단 내가 잠시라도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 집은 넓지도 않은 데다 이 강아지는 절대 소형견이 아니다. 


- 강아지... 많이 크겠죠? 집이 좁아서... 얼마나 더 클지 걱정이네요.

- 개들은 앞발을 보면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대요. 근데 얘는... 어마어마해요. 못해도 중형견 이상은 할 거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시곤 눈치를 한번 쓱 보신다. 안 그래도 집이 좁다고 걱정하는 내게 괜한 말을 했나 생각하셨나 보다. 나도 괜히 애꿎은 강아지를 보며 닦달한다.


- 강아지야, 너 얼마큼 클래, 여기서 담판을 짓고 가자. 중형견 정도는 나도 감당이 가능하다, 대형견까지는 안될 거 같은데- 말해보렴. 크헝. ㅠ


 흔들리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강아지를 자꾸 내쪽으로 보내시는 두 분. 저 자리가 네가 누울 자리라며 갈대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에 자꾸만 불을 붙이신다. 그 와중에 호군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한다.


- 우리가 데리고 가자. 얘 이렇게 두면 니가 맨날 오겠다. 임보 해보지 뭐.


 아, 이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호군의 개 알레르기!!! 개 나름 이긴 하지만 심한 경우 호군은 눈과 코가 붓고 가려워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한다.


- 알레르기 오면 임보를 짧게 하는 수밖에 없지. 우리가 더 열심히 집을 찾아줘야지.


 아니... 뭐 이렇게 혼자 마음을 다 정했어;; 무슨 마음인데 알레르기도 뛰어넘겠대.;; 결정을 하지 못하는 내게 확신으로 대답하는 호군. 


- 그... 그럼, 밖에서 자는 건 너무 추우니까 우선 임보를 제가... 


 정말, 머릿속에서 수십수백 가지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병이 있거나 아픈 아이면 어떻게 하지, 짖질 않던데 성대에 문제가 있거나 잘 들리지 않는 건 아닐까, 내가 과연 이 아일 제대로 케어할 수 있을까. 내가 잘 데리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보내지 못하게 되면... 난 이 아일 책임질 수 있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뭐지? 아이를 맡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급작스럽게 아이와 함께하게 된 이 상황에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는 나님.


 오신 두 분은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건네신다. 우선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얼마나 클지, 여기저기 아픈 건 아닌지, 예방 접종과 기타 등등 필요한 것들을 하기로 하고 글을 올리신 분과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믿음을 주고 싶기도 했고, 나도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에. 그리고 계속 나한테 해주신 응원이 결정적이었기에 발을 뺄 수 없을 거예요- 


 목욕이 시급한 상황이었으나 예방접종 전엔 목욕하는 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꼬질이 상태로 하루를 지내야 했다. 몸에선 콤콤한 먼지 냄새가 나고 발은 새까맣지만 내 품에 안긴 작은 생명에 가슴이 간질, 마음이 몽글해졌다.


 얼마가 될 진 모르지만, 우리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잘 지내보자.


저 아저씨같이 근엄한 표정의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장난꾸러기가 되었다죠. 귀 어쩔꺼야. 표정 어째요. 심장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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