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선 두부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간다. 이 아인 뭐가 그리 신나는지 궁댕이를 팡실팡실,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여기저기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그래, 한동안 묶여있었을 테니 신이나기도 하겠지. 반대쪽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멍멍이를 품에 안았다. 콤콤하고 꾸질한 냄새가 코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쉰다.
동물 병원 문을 조심히 열었다. 딸랑- 하는 소리가 나자 안쪽에서 강아지들이 우르르 쫒아나와 너는 누구냐는 듯 앞에서 헉헉거린다. 낯선 강아지들의 출현에 이 아이도 긴장한 탓일까. 자꾸 내 어깨 위로 올라탄다. 야야, 내려와- 너 생각보다 무거워.
- 저, 강아지 진료 보려구요. 오늘 처음 왔어요.
- 네~ 강아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아, 이름을 말해야 하는구나..! 그럼 우선... 하얀 강아지니까... 두부...? 이름을 말하고 얼굴을 한번 다시 쳐다보니 눈을 말똥거린다. 강아지를 의자에 내려놓고 앉아있으려니 병원 강아지들이 의자 위로 올라와 냄새를 맡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두부는 처음엔 좀 낯설어하더니 자연스레 무리 속으로 들어가 냄새를 맡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한다. 나도 병원 안을 슬쩍슬쩍 둘러봤다. 병원이라고 하지만 사료도 있고 간식도 있고 몇 가지 장난감들도 있다. 병원에서 파는 건 더 좋은 건가 싶어서 사료 이름을 유심히 봤다.
- 두부, 들어올게요-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정리를 하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막상 선생님을 보러 들어가려니까 내가 다 떨린다. 신나게 구경하는 아일 품에 쏙 안고 진료실로 들어가 말을 꺼냈다.
- 유기견인 것 같아요. 밥그릇이랑 가방이랑 놓고 전 주인이 유기했는데, 제가 우선 데리고 왔어요. 아픈 데는 없는지 몇 개월인지 우선 병원에 문의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 유기견이요?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듯 이리저리 살피신다. 귀도 한번 보고, 입을 벌려 이빨도 한번 보시고 짓궂게 장난도 치면서 아이의 반응을 확인하신다.
- 유기견이라고 하기엔 애 상태가 너무 좋네요. 아픈데도 없어 보이고, 다 깨끗해요.
- 네, 누가 키우다 버린 거 같아요.
- 내장 칩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요?
- 아, 네네. 그러면 좋죠.
-... 반응이 없네요.
- ㅎㅎ 나쁜 놈들.
자연스레 웃으며 욕을 했다. 어휴, 진짜 욕이 절로 나오네. 같이 버린 이동가방 보니까 너무 작았다. 이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꼬물이 시절에 데리고 와 키우다가 이 아이의 성장 속도를 보고 겁이 나서 버린 게 아닌가 (나 혼자) 추측했다.
- 몇 개월이나 됐을까요, 예방접종 같은 건 어떻게 할까요?
- 이빨이 빠지기 시작하면 한 4개월? 5개월 정도로 보고 있어요. 얜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고 3개월? 3.5개월 정도 돼 보이는 거 같네요. 예방접종은 처음 병원 오면 저희 같은 경우에 6번을 맞는데 얜 상태 보니까 어느 정도 맞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피검사를 해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 비용보다 그냥 다시 맞는 게 나을 것 같아요. 3번 정도만 맞아보죠.
- 저... 그리고... 얜 얼마나 커질까요?
- ㅎㅎㅎ. 얜 지금 여기 있는 강아지들보다는 훨씬 커질 거예요. 지금... 4.5kg 니까 10kg는 넘을 테고. 밖에 있는 핏불테리어 아이 보셨어요? 아마 그 아이보다도 클 거예요.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얼마나 커지길래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대기하던 강아지도 상당히 컸단 말이지.
- 대형견이 되는 건가요? 완전 커지는 거예요?
- 어휴,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중형견? 중형견보다 조오금 더 크려나?
저, 저, 무책임한 말씀. 중형견이 몇 킬로까지 중형견인지, 그보다 조오금 더 크다는 건 얼마큼 더 조오금인지. 더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했지만... 슨생님이 알리가 있나요. 내가 이렇게 클지 우리 엄마도 몰랐을 텐데. 휴- 선생님이 만져주는 손길에 꼬리를 저렇게 흔들어대면 꼬리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대형견은 아니라는 말씀에 반만 안심하기로 했다. 오늘 예방접종을 하고 2주 후에 다시 와서 또 맞아야 하고, 목욕은 해도 되고, 블라블라 어쩌고 저쩌고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나가려는데 한마디 덧붙이신다.
- 얜 몸집이 커질 거라, 사회화가 중요해요. 많은 강아지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아님 다른 개들이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지금부터 강아지 만나는 연습 많이 해주세요.
아... 그렇구나. 몸집이 큰 개가 다른 강아지를 보고 짖는다거나 으르렁거리면 사람이건 강아지건 이 아일 정말 두려운 존재로 생각할 수 있겠구나. 갑자기 확 느껴지는 책임감과 부담감. 내가 교육을 잘 못 시키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공포가 될 수 있겠다. 알겠다고, 노력해보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하고 병원을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사회화라니, 그런 건 어떻게 시키는 건가. 그냥 무조건 많이 만나면 사회화가 되는 건가. 강아지 운동장 가서 풀어놓으면 저절로 되는 게 사회환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당기는 저 작은 몸뚱아리. 내가 안 가고 가만히 서 있자 뒤돌아서 갸웃, 하고 나를 바라본다. 왜 안 따라오냐는 듯. 그래, 지금은 너의 산책시간이지. 너는 너의 할 일을 하자, 나는 나의 할 일을 배워보겠다.
각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