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실패하련다, 배변훈련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
인. 내. 심.
나 혼자서는 인내심 발휘라는 것이 어렵다. 유부의 눈빛 공격에 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니까. 나보다 조금 더 냉철한 호군이 있는 주말을 디데이로 잡는다. 그리고 그 날짜에 맞춰 물품을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근 마켓을 뒤져 구입한 초대형 배변판. (이 아이는 지금 보다 2-3배는 커질 예정이니 초대형이 맞다) 그리고 온 집안을 덮을만한 양의 배변패드. 배변판이고 배변패드고 어디든 좋으니 제발, 집에서 거사를 치러보자.
이번 주말은 산책하지 않고 이틀 내내 집에 있는 거야. 좋아. 인형과 터그 놀이할 것들을 준비해 유부와 열정적으로 놀았다. 그리고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열정적으로 놀고, 밥을 먹게 하고. 혹시나 싶어 배를 쓸어주기도 하면서 입으로 쉬- 쉬- 거리며 유부의 쉬야를 유도한다. 평소보다 밥도 물도 많이 주며 유부의 눈치만 슬슬 보는데,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일까? 어느 순간 유부는 물 먹는 횟수를 급격히 줄이고 어떻게든 집에서 실례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배변패드 위에서 슬픈 눈으로 오줌을 싸고 말았고 그 순간을 포착한 우린 달려갔다.
- 아이고 잘했어, 우리 유부
- 우리 유부는 오줌도 잘 싸지, 똥도 잘 싸지, 아주 이뻐
오구오구 맘껏 이뻐해 주고 간식도 주며 오줌을 싼 유부를 독려했다. 그러나 그러든지 말든지 유부는 두 번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듯 물을 마시지 않는다. 참을 수 있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참아내는 유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참아 이 바보야.
그렇게 집에서 하루반이 지났다. 하루반이 지나는 시간 동안 유부는 배변패드에서 오줌을 딱 한번 쌌을 뿐 오줌도 똥도 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운도 없고 의욕도 떨어진 유부. 놀자는 신호에도 시큰둥하고 가끔 끼잉끼잉거리는게 슬플 따름이다. 진짜 이게 맞아? 호군과 난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유부가 저렇게 싫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데 인내심이 정답이라고? 다시 유튜브를 검색. 정보의 바다를 떠돌다 강형욱 선생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견주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변하는 영상이었는데 지금 우리 상황과 똑같았다.
실외 배변하는 반려견, 실내 배변 어떻게 훈련시킬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xMiapPwsLO4
눈이 번쩍 뜨였다. 왜 내가 이걸 못 봤지? 서둘러 클릭을 하고 답변을 기다렸다.
- 어떤 어떤 어떤 방법보다 가장 좋은 것은 한번 두 번이라도 더 자주 밖에 데리고 나가는 거니까, 그렇게 밖에 데리고 나가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순간 내 마음을 옥죄고 있던 어떤 매듭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사실 내가 좀 번거로운 걸 빼면 유부에게도 우리 집에도 좋은 일이다. 같이 영상을 보던 호군과 눈이 마주쳤고, 우린 일어서서 유부의 몸에 하네스를 둘렀다. 밖에 나간다는 걸 안 건지 유부의 꼬리가 붕붕 돌아가고 문 앞으로 달려 나가 끼잉 끼잉 거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주인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 무슨 소린지 너무 잘 알겠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실내 배변을 성공한다고 한들 내가 지금 느끼는 죄책감이나 안쓰러움이 덜어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넌 실외 배변하는 아이로 자라거라. 니 뒤는 내가 책임진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