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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Sep 29. 2023

순례길 마지막 이야기

순례길을 걷는 이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을 성당 앞에 앉아있었다. 매일 걸어온 이 길의 의미를 충분히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혹은 새로운 길 앞에서 순례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한 번이면 충분할,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조차 경험하지 않을 힘들고 고달픈 이 길을 어떤 이유로 걷고 또 걷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까미노의 여정이 주는 의미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길 위에 있다고 몇 번을 느꼈으면서도 나는 하루하루의 의미에만 몰두했을 뿐, 생장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 '순례길'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모든 순간을 총체적으로 곱씹을 여력이 없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주증을 받으러 가기 위함이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아랫길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몇 걸음을 가다 보니 순례자 사무소가 나왔다. 순례의 여정을 마친 순례자들이 사무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사전 설문을 마치고 난 다음 대기번호를 받았다. QR코드로 설문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을 도와주고 나니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사무실 안에는 완주증 심사를 위해 열댓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안내받은 대로 한 직원 앞에 앉았다. 그는 내가 순례길을 제대로 완주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직원은 크레덴시알을 통해 출발한 도시부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거쳐온 마을들을 확인했다. 그동안 여러 마을의 알베르게와 펍, 관광지를 지나오면서 찍은 세요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직원은 내가 가지고 있던 두 개의 크레덴시알을 모두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담당하겠다고 말을 하고서는 나를 자신의 테이블로 데려갔다.


  그녀와 나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곳에는 어떤 이유로 왔는지 등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별 씨는 사람들이 왜 이 길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두 개의 크레덴시알


  많은 사람들은 순례의 여정을 인생과 비교한다. 자신의 인생이 가진 가치나 의미를 찾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 길을 걷는 과정이 인생과 참 닮아있다는 것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수많은 오르막길과 어두운 길을 만나게 되더라도, 다시 내리막이 있고 환한 빛이 길을 밝혀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비를 맞닥뜨리거나 한계에 봉착했을 때, 희망은 반드시 다시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 길과 인생의 공통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나에게 이 길은 우리 인생과 다른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을 다시 이 길로 모여들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순례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순례의 여정을 결심한다. 종교적인 이유, 현실로부터의 도피, 새로운 경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등 각자의 삶에서 발생한 고민의 순간이 순례길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점에 서고, 또 어떤 사람은 뚜렷한 목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또한 이 길을 걷는 자세도 모두 달랐다. 어떤 이는 오랜 시간을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또 어떤 이는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어느 구간만 천천히 곱씹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한 달간의 여정을 통해 780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길을 완주했고, 또 다른 사람은 순례길 완주증 받는 것을 목표로 하여 100KM만 걷기도 했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몇 번에 걸쳐 이 길을 완주해 내는 사람도 있었다.


  순례자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목표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한 시간에 6KM를 걸었고, 나와 자주 만난 이모는 같은 시간 동안 3KM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나갔으며, 심지어 오토바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빨리 가야 하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이 길을 지나갔고, 천천히 가고 싶은 사람과 천천히 가야 하는 사람은 같은 길을 느린 속도로 지나갔다. 나와는 반대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각자 다른 이유, 각자 다른 목적지, 각자만의 속도와 방향이 만들어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길 위의 순례자들은 서로가 가진 환경이 어떻든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간혹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순례자들의 지지가 그 불편함을 덮어버리곤 했다. 길을 걷는 순례자만이 아니었다. 길과 함께 살고 있는 주민들, 혹은 다른 이유로 길을 지나가는 외부인들도 마찬가지로 순례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환대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순례길 위에 서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절대적인 환대였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마주치기 싫더라도 모두들 길 위의 순례자들에게 환대의 인사를 건넸다. 까미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 위에서는 모든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그것을 달성해 나가는 속도, 그리고 방향, 그 모든 것이 저마다의 가치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환대였고, 그 사람에 대한 환대였다. 모든 가치와 모든 방향에 대한 환대였으며 모두의 꿈에 대한 환대였다. 모든 것들은 환대받았고, 환대받으므로 그것들은 더욱 가치가 있었다.


  순례길의 끝에서 나는 순례길이 만들어낸 사회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나를 만났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고, 목적지가 어딘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현실. 수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잡은 희미한 꿈, 그렇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주어지는 불분명한 수단과 쫓기듯 달려가야 하는 속도.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그 길의 과정에서 수없이 포기되고 버려지는 가치들. 꿈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어느새 위로가 되어버린 사회. 우리의 현실은 순례길의 반대에 서 있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순례자들은 현실과 다른 세계를 만나고, 그것을 추억으로 새긴 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 이들의 망므 속에는 순례길의 환대가 박혀있을 터였다. 돌아간 현실 속에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를 예전처럼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조건 없이 타인의 꿈을 응원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조건 없이 응원받았던 자신의 꿈. 현실에서 이것을 기억하고 실천하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그 환대가 잊힐 때쯤, 다시 순례의 여정을 떠나 추억을 충전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 맞서 싸우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자신의 목적과 꿈에 대한 응원,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것에 대한 환대를 번번이 좌절시키는 현실에게 그래도 환대는 여전히 이어진다고, 어디선가 모든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할 힘을 다시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길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을 마치고 완주증을 수령했다. 내가 그동안 걸었던, 열렬했던 이 길 위에서의 수고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나의 첫 순례 여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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