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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Sep 04. 2023

순례길 서른 번째 이야기

문제

구간 : 벤다스 데 나론 - 보엔떼
거리 : 32.9KM
소요 시간 : 9시간


  오늘 계획한 루트에는 '멜리데'(Melide)라는 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문어 요리 때문이었다. 스페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바스 알 아히요'를 비롯한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순례길을 걷는 중에도 많은 해산물 요리를 접할 수 있는데, 순례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요리는 '뿔뽀', 문어를 이용한 요리였다. 이 지역뿐 아니라 내가 지나온 여러 도시에서도 '뿔뽀'는 항상 인기 메뉴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은 역시 해산물은 갈리시아 지방에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들이 싱싱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였다.


가을이 오는 것 같다


  한참을 걸어 멜리데에 도착했다. 같이 걷는 일행들과 함께 수많은 식당 중 하나를 선택했다. 평점이 높은 집과 한국인 후기가 많은 집 중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선택했다. 우리가 고민하며 이 가게 앞을 지나가자 문어 요리를 하고 있던 사람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우린 인터넷으로 찾아본 행위가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레 이 식당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외국에서 듣는 한국말의 친숙함은 그 힘이 대단했다. 너무나도 특별할 것 없는 호객 방식이었지만 단순한 게 가장 강력했다.



  별 다를 것이 없는 일정이었다. 오늘따라 어떤 걱정도, 어떤 스트레스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기대하던 뿔뽀 요리는 환상적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지만 쉴 곳이나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없었고, 숙소도 미리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걷는 길도 험하지 않아서 남은 날을 아쉬워하며 천천히 걸었다.



  무난하게 보엔떼에 도착하여 숙소로 들어갔다. 다른 숙소처럼 1층에는 식당 겸 바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짐을 풀고 나서 간단히 샤워를 한 다음 맥주를 들이켰다. 알베르게가 두 개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쳤다. 숙소 홈페이지에는 예쁜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였으나 실제로 보니 물 상태가 영 별로였다. 수영장을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몸 안에 갇힌 열을 물로 풀어줘야 피로가 쉽게 풀렸다. 특히 몇 시간 동안이나 신발 속에서 열을 머금고 있던 발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걷는데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열을 빼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수영장이 있는 곳을 이용하거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시냇물이 있으면 물에 몸을 담그곤 했다. 


  숙소에 올라가 낮잠을 자고 저녁 일곱 시 정도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왔다. 마땅히 끌리는 메뉴가 없어서 햄버거 세트를 시켰다. 잠시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니 직원이 햄버거를 가져다주었다. 내일을 계획해야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약 48KM 정도가 남아있으니 여기서부터 24KM 근방에 있는 마을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레아(Brea) - 산타 이레네(Santa Irene) - 아 루아(A Rua) - 오 뻬드로우소(O Pedrouzo) 중 한 군데에서 머무르는 것이 적당해 보였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 마을들에는 괜찮은 숙소가 없을뿐더러, 그런 숙소마저도 모두 예약이 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마을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브레아 전에 있는 까예(Calle), 살세다(Slacede)의 숙소들에도 모두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모두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구간으로 몰려들었고, 이 작은 마을들의 숙소마저도 모두 점령해 버린 것이었다.


  평탄한 하루였다. 화창한 날씨와 맛있는 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혼자 잘 곳이야 어디에든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거의 한 달간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가 순례길을 마치기 며칠 전에 발생했다. 불과 어제 급증한 순례자들을 마주했는데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해결 방식을 찾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리고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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