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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Sep 25. 2022

오늘을 넘으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것에 대해 누가 물으면 후회하지 않지만 추천하진 않는다고 답한다. 나의 일이나 삶을 지키려 노력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은 누구나 그 사연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둘 이상을 키우는 이는 (적어도 막내가 인간 비슷한 존재가 될 때까지)아무 것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럴 힘 같은 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작가가 직업이기도 하므로 이것은 매우 곤란하다.




추석 연휴 직전부터 지난주까지 2주 동안 온가족이 아팠다. 첫째부터 열이 났고 둘째가 옮아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다음은 남편이었고 내가 막차를 탔으며, 하나같이 끝은 심한 기침이었다. 아니 끝인줄 알았으나 또 다른 것이 기다렸다. 중이염. 귀부터 턱까지 송곳을 찌르는 듯이 아프고, 밤새 자고 일어나면 귀 안에서 피가 흐르는 지독한 중이염.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만 당첨되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항상 웃는 얼굴인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내 귀를 들여다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화면 속의 내 귀는 내가 보기에도 무슨, 공포영화 세트 같았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자료사진들보다도 처참한 상태. 하필 들리지 않는 오른쪽 귀라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구나. 들리지 않는 귀라 그나마 다행인가. 나는 왜 매사에 ‘그나마 다행’을 찾을까. 그냥 그만하라고 다그치고 싶어졌다. 건드리지 않아도 아픈 귀에 대고.

“차근차근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선생님이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왠지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 같았다. 약만으로는 안되겠다고 항생제 주사를 처방받았다.




어제 병원에 가는 것만도 쉽지 않았다. 아침에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둘째를 데리고 센터에 가서 치료수업을 들여보내고 그 사이에 병원에 달려가 접수를 미리 하고(대기가 늘 어마어마하게 길기 때문에) 다시 센터에 와서 대기하다 수업 상담을 마친 뒤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그대로 빈 유아차를 끌고 병원에 왔다.(이때 이미 만 보를 걸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느으으으리고 둔감한 성격이었지만 그때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빠릿빠릿한 엄마이자 일꾼이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만은 어릴 때 그대로라 내 귀가 그리 되도록 몰랐고…아까 화면으로 본 귀는 귀가 아니라 나인 것 같아.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에 오는 길에 조금 글썽였다. 챙이 긴 야구모자를 쓰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참 마음을 누르며 걸어가다, 뒤돌아서 병원으로 뛰었다. 유아차를 두고 왔다! 집에 거의 다 왔었는데!




지난 여름은 너무 길었고, 가을의 끝은 이미 아득하다. 쓰고 싶고, 그리고 싶다. 나는 문자 그대로 ‘하루 종일’ 혹은 ‘밤새’ 책상에 앉아 와르르 쏟아내야 하는 타입이지만, 요즘엔 그럴 시간도 힘도 없다. 며칠 새벽에 깨는 바람에 작업실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종이와 자료와 화구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버티면 새로운 책상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버티면.




작년에 그리고 서랍에 넣어둔 그림을 책상을 비우다 찾았다. 올해의 내가 또 이러고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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