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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이야기

탄생에서 성장까지

서양음악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소개된 것은, 1901년이라고 합니다. 고종 황제의 명에 따라 독일에서 지휘자를 초빙, 우리 음악인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역량을 키워, 1901년 탑골 공원에서 그 첫 무대를 마련했다는데요, 120여 년이 지난 요즈음, 매년 연말이며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각 교향악단별로 한 해의 마무리를 하고 다음 해를 시작하는 것이 제법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국내 교향악단이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도약하는 중이고, 각 시, 도는 물론, 사설 교향악단까지 넘쳐나, 이제 교향곡 정도는 언제나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요, 도대체 교향악 음악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1601


서양음악사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숫자인데요, 바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라는 오페라가 첫 공연된 해이자 바로크 음악의 시작이 된 해이지요. 물론, 그 당시에 영상자료나, 녹음 파일이 있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학자들 마다 1607년, 1605년 등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17세기 초라고 하면 맞을 것 같네요. 오페라가 오케스트라와 무슨 상관 이냐고요? 오페라가 대중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반주를 오케스트라가 맡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왜 17세기 초라하지 않고 1601년이라고 했냐고요? 서양 음악 하면 무척 역사가 깊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서양음악은 1592년, 임진왜란 이전에는 그 형태가 불분명했다는 팩트를 짚어 주기 위해서요. 사실, 조선에서는 세종(재위 기간, 1418-1450) 때, 박연에게 아악을 정비하도록 하여 지금의 오선지와 비슷한 형태의 악보를 비롯, 각 악기들의 기능 개선 및 합주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어찌 보면 무척 앞선 행보를 보였고 그 뒤를 이어 성종(재위 기간, 1469-1494) 때에도 다시 가다듬어 음악에 대한 왕실의 관심이나 그 중요성이 부각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서양의 오케스트라의 태동기인 17세기에는 각종 전쟁과 당파싸움으로, 15세기 이후 발전을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워, 언제나 오케스트라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선조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 이렇게 나열하곤 합니다.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반주의 역할로 대중에게 선보인 오케스트라는, 사실 이전에도 존재는 했습니다. 주로 교회에서 연주하거나, 궁중에서 귀족들을 위해 연주하곤 했지요. 물론, 지금의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 문화회관 처럼 무대가 있어 오케스트라만의 연주를 보기 위해 청중이 모여들었던 것은 아니고요, 예식의 일부를 담당하는 BGM 정도였지요. 아직은 농업 중심의 사회였던 유럽인들에게 음악이란 큰 사치였고,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오페라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오케스트라는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오케스트라라는 어원 자체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고,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서 연극이나 춤을 추는 공연자들의 공간인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서 그 진행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악기 연주자들이 앉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는 뜻에서, 오페라를 반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유럽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됐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음악을 귀족만이 아닌 평민들, 특히 당시 교역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신흥 부호들에게도 음악을 접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처음에는 귀족들의 결혼식이나 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지만,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상업적인 목적의 오페라 극장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극장들은 귀족들과 신흥 부호, 그리고 서민들에게 시즌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 유럽의 유명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기 시작합니다. 주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작곡된 오페라들은 1번 공연에 그치지 않고 반복되어 연주됨으로 유럽 전역에서 유명해지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복사기도 없어 악보가 비싸기도 하고 심지어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바로크의 바로 전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까지 4선이었던 악보가 5 선으로 고정되고, 악보 출판이 활성화되고, 악기가 발전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이루어졌지요. 


크레모나(Cremona)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인 크레모나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의 80% 이상이 현악기였기에, 오페라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현악기의 수요는 많아졌지요. 현악기는 주로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인 브라치아(Bracia)와 크레모나에서 주로 만들어졌습니다. 베니스와 밀라노의 중간에 위치한 이 지역은 1500년대 중후반부터 악기의 명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각 왕실과 귀족들이 주문 제작을 의뢰했던 곳입니다. 주로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지던 당시의 관습대로 대대로 그 비밀을 지켜가며 아들로, 손자로 가업을 이어가기 시작했지요. 초반에는 브라치아의 제작자들이 조금 더 인지도도 있고 작품성 있는 악기들을 만드나 싶었는데, 브라치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17세기 초반, 유럽을 뒤흔든 전염병, 홍수와 가뭄이 이어지며 브라치아의 모든 공방의 마스터들이 한꺼번에 사망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덕분에 브라치아에서 의뢰받은 현악기의 생산이 크레모나에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갑자기 일감이 몰리게 되자, 크레모나의 터줏대감인 아마티가의 손자는 동네 청년들에게 악기 제작을 함께 해 볼 것을 권유하며 바이올린 제작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라는 성을 가진 청년들은 아마티에게서 바이올린 제작법을 배워 자신의 가업으로 승계하며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성장을 합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시작이 언제다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여러 가지 시대적인 흐름이 오케스트라의 시작을 예고하게 됩니다. 오페라 속에서, 오케스트라는 막과 막 사이에, 혹은 배경 전환을 위해 싱어 없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전통이 생기며, 심포니의 서막을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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