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증질환 계몽의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586세대인 제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국민 교육 헌장"이라는 것을 외워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던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외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시험에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부터 시험에 나오기 시작했고, 거의 매주 한 번은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에서 함께 외우기도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기도 합니다. 저는 국민교육헌장의 첫 문장이 참 좋았습니다. 민족중흥이 무언 지는 모르지만, "사명"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은 적어도 저는 이 나라에, 이 사회에서 제가 해나가야 할 일이 주어진 멋진 사람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입식 교육의 무서운 점은, 민족중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국가가 제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기 전에 제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진 것은 별로 없긴 하지만요.
나이가 들면서, 저는 질병의 예방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90년대, 테니스를 하다 보건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남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며 질병이 걸리기도 전에 예방법을 가르치는 미국 의료체계가 무척 신기했습니다. 금연 교육이 질병예방으로 이어져 얼마간의 국가 예산을 절약해 준다며 벌써 미국 암협회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부터 교육을 실시하고, 대학교 보건 시간에는 유방암 자가진단법과 에이즈 예방 교육을 아주 철저하고 실질적으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에이즈는 당시 미국에서는 가장 큰 재앙에 가까웠는데, 이를 위한 치료약 개발과 함께 예방 교육부터 실시하는 미국인들의 시스템이 참 부러웠습니다. 귀국해서, 바이올린을 하며 어깨 통증에 시달리며 저는 악기를 가르치려면 예방법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며 마치 그것이 저의 사명인 듯 열심히 삶의 "양"이 아닌 "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부르짖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명은 다른 곳에 있었던 듯합니다. 지난 5년여간, 저는 마치 국민건강보험공단 희귀병 밀사인 듯, 듣도 보도 못한 질병들과 친해져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청개구리라 하시면, 농담처럼 저는 청개구리 김가의 장충파 창시자라고 말하며 평범을 멀리하는 저의 인생에 오늘 또 하나의 희귀병 타이틀이 달렸습니다.
봉와직염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저도 어제 처음 들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급성 세균 감염으로 갑자기 염증이 생겨 농이 차는 거라네요. 제 증상은 3일전, 자고 나니 갑자기 왼쪽 발이 아파 무언가 하고 보니 왼쪽 복숭아뼈 옆에 복숭아만 한 혹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생겨났고, 복숭아 철인 여름처럼 뜨끈뜨끈 하더라고요. 자다 발길질을 했나 하고 지나갔는데 이게 점점 발목을 타고 후끈후끈 거리 더니, 저녁때는 엉덩이 근처까지 무언가 찌릿찌릿하고 오한이 나더라고요.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여기저기 물어보기 시작하니 빨리 병원에 가보라 하더군요. 병원도 끝났을 시간, 뭐 별 일이야 있겠어, 하고 진통 소염제를 먹고 하룻밤 지나니 심지어 좀 가라앉았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예방"차원으로라도 병원에 가자 해서 병원에 갔는데, "봉와직염"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명에 반깁스까지 훈장으로 달고 나왔네요. 그나마 다니던 병원에 갔기에 아주 간단하게, 금방 진단이 되었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동네병원 갔다가 또 절망할 뻔했었습니다. 약 4개월 전, 동네 피부과에 탈모 치료하러 갔다가 여기서는 못 고친다, 큰 병원 가서 조직 검사해봐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암인 줄 알고 병원 약속 잡힐 때까지 밤마다 울었거든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봉와직염은 대상포진처럼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진 때 생기거나, 모기에 물린 상처를 무심코 긁어도 생기고, 작은 찰과상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네요. 저는 4 개월 전 동네 피부과에서 불치라고 여겼던 저의 "탈모"때문에 고용량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고 있고, 요즘 속눈썹과 앞머리가 자란다 싶더니, 그 틈을 세균이 파고들었네요. 이건 뭐 모든 병의 부작용은 모두 다 내게 오라도 아니고, 참으로 부실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나 봅니다. 반전은, 부실한 육체 대신 저에게는 이 모든 일에도 즐거워할 줄 아는 강인한 멘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탈모 치료 때문에 봉와직염이 걸렸다 하면, 아마 제가 왜 탈모가 생겼는지, 어쩌다 그렇게 심한 지경까지 돌보지 않았냐고 궁금하실 겁니다. 저의 탈모는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이고, 그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2 년 전, 심장암 중에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원발성 심장 활액막 육종이라는 암과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원인일 겁니다. 혼자돼서 머리가 빠지는 것 따위에 신경 쓸 여력도 정신도 없더군요. 떠나간 남편도 절 힘들게 했지만, 남은 딸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니 그걸 챙기기도 버겁더군요. 딸에게 정말 미안했던 것은, 엄마도, 아빠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의 재능 있는 예체능계 학생들을 길러내느라, 정작 딸과 일상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겨우 세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던 2년간, 아빠는 희귀병인 심장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딸도 건강상 약간의 트러블이 있어 두 사람이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하는 바람에, 저는 그저 힘들어만 했으니, 사실 저희 세 식구는 가족으로서의 기억이 별로 없긴 하지요. 그 미안함을 저는 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으로 면죄받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딸아이를 먼저, 먼저 하다가 망가져 가는 제 몸을 돌보라고 신이 또 저를 한방 먹이신 것 같기도 하네요.
유방 외 파제트병, 길랑바레 증후군, 원발성 심장 활액막 육종, 그리고 봉와직염까지, 살아가며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도 지나갈 수 있는 이 병명들이 지난 5년여간 제가 마주쳐야 했던 질병들이었습니다. 우울증, 원형탈모, 가끔 실신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은 다른 분들도 다들 겪으실 수도 있는 일들이시니, 그냥 패스하렵니다. 병명 하나하나를 설명하려 해도 글 한 편씩은 쉽게 써 내려가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패키지로 한꺼번에 저한테 굴러들어 온 것입니다. 이쯤 되면, 집을 옮기던가,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던가, 아님 정신줄을 놓았던가 했어야 할 정도 아닌가요? 한 번은 딸아이가 자신에 대한 글은 브런치에서 내려달라고 하더군요. 남자 친구 부모님께서 제 글을 보고 딸아이의 유전자 걱정을 하신다며 울더군요. 그때 글을 내리며 딸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병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네 몸에는 이 모든 것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의미 있게, 즐겁게 지내는 엄마의 국가대표급 멘털도 흐른다고요.
저는 제가 질병관리본부나 국민건강관리공단 희귀 질병 홍보대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이 모든 것들이 패키지로 저에게 한꺼번에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저도, 요즘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이 불행 패키지를 얼마만큼이나 열어 보여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남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엄청난 불행의 아이콘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가끔 혹여 자신에게 저의 불행의 불똥이 튈까,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니 괜히 제 자신이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불행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겪었던 이 모든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나는데, 그 운명을 향해 가는 과정에 질병이란 피할 수 없으니까요. 아직도 남편의 진단을 내려주신 의사 선생님은 저를 만나며 미안해하시는데, 저는 그 선생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어쩌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그저 "심장질환"으로 외국에서 시합하다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는 남편과 투병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또, 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성과 위주로 아기가 그냥 잘 자라주었구나 하고 자기 만족을 하던 우리 부부에게 딸아이의 투병생활은 딸에게 쇼윈도 부모가 아닌, 살을 비비며 함께 울고, 싸우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진짜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저에게는, 제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들과 친지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 준, 값진 공부이니까요.
저는 더 이상 제 사명이 민족중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름도 외우기 힘든 병들을 나열하며, 난 이런 불행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보다 덜 불행한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잔소리나 늘어놓는 것도 아닌 것을 압니다. 제 사명은 그저, 이런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되고, 매일매일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가끔은 슬픔 속에서도 웃음이, 절망 속에서도 가느다란 꿈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 봉와직염이 걸려도 고치면 됩니다. 머리가 빠지면 가발을 쓰면 되고요, 살이 찌면, 88 사이즈, 잘 나옵니다.
내일 지구 종말이 온다 하면 저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지 않을 겁니다. 저는 사람 말고는 잘 키우는 게 없어서 내일이 되기 전, 제 사과나무는 분명히 죽을 거거든요. 그 대신, 저는 나는 내일 종말이 오기 전, 12시간 안에 사과나무 심었다 죽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종말을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집니다. 저는 저와 제 주변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그 한 번의 삶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즐겁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하는 유쾌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