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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싱글

내가 과부?

저는 평생을 늙지도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습니다. 55세라는 나이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2021년은 제가 30여 년 만에 싱글로서 시작하는 첫 해가 되었습니다. 한 때는 꽤 잘 나가는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저희 분야에서만큼은 이름 날리는 입시 선생이기도 했고, 대학에 재직하며 후학을 키우기도 하고, 나름 영재 지도자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학생들을 키워내고, 딸 또한 만 15세에 국내 SKY 대학에 입학시킨 극성 엄마로 이름을 날리던 제 모습만 아는 분들께서는 드디어 김유정이 늘 출장만 다니던 남편하고 갈라섰구나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제 자신이 저를 보아도 저는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편에 속해 사별이라는 단어와는 좀 어울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원치 않은 시점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을 30년이나 했으니 중간에 지지고 볶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어찌어찌 오십 줄을 함께 넘기며 이제는 "끝까지 고!" 했는데, 그 생각하자마자 남편이 먼저 "끝"하고 가더라고요. 2020년을 코로나와 사별의 아픔 속에 보내고 나니, 이제 현실이 다가오네요.


55세의 한물 간 악기 선생님, 돈을 버는 법 보다는 쓰는 법을 더 잘 아는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닌 어정쩡한 과부, 싱글이긴 하나 친정 부모님과 딸아이에게 빌붙어 사는 팔자. 보이는 것이라고는 늘어난 체중계 숫자와 목주름 밖에 없는 전혀 화려하지 못한 싱글이 되어버렸네요. 남편은, 자신의 투병생활 동안 수고했다고 저에게, 통장, 부동산,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이 아닌 찐 20Kg의 지방덩어리를 배에 심어주고 떠났고, 무료 바이올린 교습소를 차려 모든 학생을 무료로 가르치라던 친정아버지께서는 슬슬 경제활동을 하라시며 눈치 보게 만드시네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이리 혼자될 줄.


저는 4남매의 장녀입니다. 저와 막내 동생의 차이가 4년 9개월이니 늘 북적북적대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북 출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가친척이 많으신 데다가, 친정아버지께서 맏이이신 관계로, 저희 집은 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기억하시기로는 설이면 닭을 30 마리 정도 잡아 손님들 오실 때마다 새 소반에 닭 한 마리씩 올려서 내어갔다니, 그 규모가 짐작되시겠지요. 그러다 혼자 유학을 가서 남편과 어린 나이에 만나 결혼을 한 것은 어쩌면 제가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은 유학을 가서 첫 번째 여름, 자취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아침에 볼일을 봤는데 화장지가 없어 당황했던 일입니다. 서울이라면 동생이나 누구를 부르겠지만, 이건 나 혼자 있는 방인데 너무 서럽더라고요. 샤워로 대강 마무리를 하고 화장지를 사러 가던 그 아침, 비는 또 왜 그리 미친 듯이 내리던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하여간 물 범벅이 돼서 슈퍼까지 걸어갔다 온 생각이 나네요.


제 또래에는 제법 많은 싱글 여성들이 있습니다. 간혹 가다 사고로 사별한 친구들도 있지만, 저처럼 암을 간병한 후 보낸 친구는 아직은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자신의 의지로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돌싱들 아니면 우아하고 멋지게 싱글이기를 선택한 골드 미스들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30여 년 전 제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아준 친구도 아직 싱글이더라고요. 물론 그 친구는 여전히 20대처럼 활기 있고 아름답지만요. 제 주변의 싱글들은 그 나름대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저 어찌하다 보니 싱글이 된 저는 아직 시집보낼 딸도 챙겨야 하고, 친정 부모님 일들도 거들어야 하니 이거 뭐 싱글 아닌 싱글 같은 싱글 초짜인 제가 됐네요.


모든 일은 처음이지만 어쩌다 싱글이 된 저에게는 싱글 생활도 처음이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진짜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앞으로의 삶이 녹록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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