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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집과 예배당 사이

수호신과 하나님이 공존했던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세계는 옛것과 새것, 토속 신앙과 기독교, 그리고 가부장적인 친가와 자유로운 외가의 문화 속의 혼돈 그 자체였다. 얄궂게도, 우리가 살던 집은 왼쪽에는 무당집이 오른쪽에는 교회가 있는 99칸짜리는 아니어도 꽤 큰 한옥이었고, 당시 양옥집들에만 있던 욕조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나는 꽤 클 때까지 그 집에 살았는데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나이였는지 화장실에 빠져 겨우 매달려 있던 것을 밖에서 욕조 공사하던 아저씨가 꺼내 주시고는 계속 냄새난다고 놀리시던 기억이 난다..



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한옥에 우리는 텔레비전도 있었고, 엄마 아빠 방에는 침대도 있었으며, 에어컨도 있었던 듯하다. 그때 우릴 돌봐주시던 이모님을 우리는 성수 엄마라고 불렀었는데 무엇이 틀렸는지 내가 다들 모여서 여로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성수 엄마만 못 들어오시게 심술부렸던 생각이 난다.



이런 집이었던듯

나랑 가장 친했던 동네 친구는 무당집 외손녀였다. 70년대 초반은 아직도 어린이들을 많이 유괴할 때라 집 밖으로 잘 못 나가게 했었는데, 나랑 동갑이었던 그 친구는 내가 우리 집 창에서 내다보면 그 집 앞마당이 훤히 보여 나랑 말동무를 해줬었고 우리 집에 놀러 와 줬었다. 특히, 굿을 하는 날이면 우리 집에 놀러 와 자기 외할머니 작두 타는 것도 보고, 자기 엄마 장구 치는 가락도 가르쳐주곤 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던 꼬맹이 둘이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기어 다니는 동생들 다 방으로 처넣어 버리고 굿 구경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 아이가 "왔다, 왔다" 하면 무언지 모르는 서늘한 기운이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내가 귀신을 본 것 같은 기억도 있으나, 그게 꿈이었는지 아니면 실지로 본 것인지는 아직도 구분되지 않는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꼬마가 나한테 갑자기 추워지면 귀신이 오는 거라고 “가라”라고 소리치면 된다고, 그러면 내 수호신이 와서 물리쳐 준다고 이야기해 준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가끔 뭔가 오싹해지면 “가라”라고 소리치고는 주기도문을 외우니, 하나님이건 수호신이건 모두 다 와서 지켜주지 않을까?


내가 일주일에 2번 이상씩 보던 옆집 굿 광경

우리 집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다. 우리 어머님은 순교하신 목사님의 따님이다. 이북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다니는 영락교회에서 나는 영아부부터 다니며 성극을 하고, 찬양대를 했다. 엄마는 성극을 할 때 입힐 드레스를 손수 만들어 주셨고, 나는 천사처럼 예쁜 그 드레스가 너무너무 좋았다. 토속종교를 믿으시던 우리 친할머니는 보름에 한번 우리 집에 오셔서 고사를 지내셨다. 키가 크고 곧으시며 한복을 입은 자태가 아름다우셨던 할머니가 하얀색 한복을 입으시고 고사를 같이 지내시는 할머니-아마 보살님 아니셨을까?-와 함께 정갈하게 머리를 쪽지시고 고사를 지내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물론 할머니가 가신 다음, 천사 드레스를 입고 고사 지내는 흉내를 내다가 엄마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더 아프지만 말이다.


또 다른 옆집이었던 교회, 지금은 이사를 갔단다


우리 집 종교의 혼란은 귀한 장손인 내 남동생의 사고로 그 정점을 맞이한다. 당시 다섯살이던 남동생은 4월, 고추장을 담그려 죽을 쑤는데, 장작불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잘못 미끄러져 죽통-마치 목욕탕만큼 컸다-에 빠져 2도 화상을 입고 죽네 사네 할 때였다. 엄마는 병원에 가시고 외할머니가 우리를 돌보아 주셨는데 교회에서 심방을 왔다 하더란다. 목사님 사모님이셨던 외할머니는 들어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하셨고 교회분들이 심방을 마치고 돌아가셨는데, 문제는 그날 밤, 우리 고모가 전화를 거셔서 난리가 나셨단다. 고모는 조카를 위해 우리 옆집에서 엄청나게 큰 굿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중간에 갑자기 무당 할머니가 딱 멈추더니 더 큰 신이 봐줄 텐데 왜 자기한테 왔냐고 화를 내고 굿판을 접었단다. 알고 보니 그 시간이 교회에서 심방 온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울 엄마 아버지도 조금 무서워하셨다는 뒷이야기.




어떤 신이 봐주었건 내 동생은 무사히 일어났고, 그 일 때문인지 무언지 할머니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셨고 지금은 우리 온 집안이 할렐루야다. 여하간 그 무당집을 기억하는 것은 나밖에 없고 내 동생들은 아직도 내가 너한테 귀신 붙었다 하고 거짓말하면 무서워하니, 종교의 혼란에서 나는 동생들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으니, 뭐 이 정도면 그냥 재미나는 어릴 적 추억거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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