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없이 음악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악기의 발달
르네상스 이전의 기악음악은 귀족들이 식사를 할 때나 춤을 출 때 정도 쓰였는데, 기악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은 1450년경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음악이나 마드리갈에 악기가 한 파트를 담당하거나, 악기 반주로 노래를 하며 기악이 음악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지요. 다양한 현악기와 관악기가 개발되고, 만들어지고, 연주됐습니다. 이러한 관악기와 현악기군은 보통 세트로 제작되어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전 음역을 하나의 음색으로 통일해서 연주할 수 있었다네요.
비올족이 15세기의 후반, 류트 등과 함께 궁정 기악 합주의 중심이 되었지요. 비올족에는 악기를 두 무릎 사이에 끼고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족과 악기를 턱 밑에 대고 연주하는 비올라 다 브라치오족이 있는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초반에는 스페인으로부터 전수된 비올라 다 감바족의 악기들이 많이 쓰였으나, 후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올라 다 브라치오 형식의 악기들이 주가 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악기군을 형성하게 됩니다.
현악기가 처음으로 기록에 남은 것은 1535년 화가 페라리가 그린 이탈리아 사로로 성당의 벽화에서 입니다. 이 즈음, 이탈리아 브레치아의 가스파로 드 살로(1540-1609)와 크레모나의 안드레아 아마티(1511-80) 공방을 만들어 바이올린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궁정에서 24대의 크고 작은 바이올린을 비롯해 대량 주문이 들어오는지라, 대부분의 공방들은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현악기를 만들었어요. 특히 아마티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또 그 손자에게 공방을 물려주었습니다. 초반에는 브레치아의 공방들이 우세해 보였는데, 162-30년대에 이탈리아에 불어닥친 기근과 홍수, 전염병에 브레치아의 공방들이 전부 문을 닫게 됩니다. 오페라의 발달로 악기의 수요는 늘어가는데, 제작자가 없으니 어려움을 겪던 안드레아 아마티의 손자 니콜로 아마티(1596-1684)는 가족이 아닌 동네의 제자들을 받아 훈련시키기 시작하는데, 그 제자들이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안드레아 과르네리(1626-98)입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크레모나는 현악기의 성지가 됩니다.
관악기로는 플루트, 리코더, 숌, 코르넷, 트럼펫 등 대부분의 르네상스 관악기들은 중세부터 사용되던 것이었고, 트롬본의 초기 형태인 삭버트, 그리고 백파이프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크롬 호른 등이 있었다네요. 타악기 역시 중세부터 쓰이던 심벌즈, 트라이앵글, 벨 등이었으나, 악보에는 표기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찰현악기인 바이올린족의 악기가 전문 음악인들을 위한 악기였다면, 발현악기인 류트는 연주자 자신이 연주하며 즐길 수 있는 악기였다. 주로 여자들이 연주했던 류트는, 프렛이 있었으며, 어느 프렛에 어느 손가락을 놓아야 하는지 표기되어 있는 타블라투어로 기보 되어있다네요.
건반악기로는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가 있었는데, 이 둘은 구조적으로 어떤 재질의 조각이 현을 때리느냐에 따라 구분이 되었다고 하네요. 건반을 때리는 힘에 따라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비브라토도 연출할 수 있던 클라비코드보다는 소리는 좀 작지만 하프시코드가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프시코드는 영국에서는 버지널,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생, 이탈리아에서는 클라비 쳄발로라고 불리며 다양한 사이즈와 모양으로 나왔다네요.
기악음악의 유형
르네상스 기악음악의 형태는 춤음악, 성악 음악의 기악 편곡, 기존 선율의 편곡, 변주곡, 그리고 추상적인 기악음악으로 나뉠 수 있답니다. 춤곡은 보통 느리고 빠른 한쌍 춤곡으로 대개는 실지로 궁정에서 사교춤을 출 수 있는 곡들이었어요. 기본 멜로디와 템포, 박자가 있고, 연주자들이 즉흥으로 장식음 등을 규격에는 맞지만 각기 다른 형태의 음악이 연주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졌어요. 기악음악 중, 특이한 것은 기악음악만을 위해 작곡된 추상적인 곡들인데, 전주곡과 즉흥곡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추상적인 곡들은 건반악기나 류드가 연주자들을 소개할 때나, 교회 예배 중간 시간을 채우는 형식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전주곡, 환상곡, 리체르카 등의 이름으로 불렸어요.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은 16세기 중반부터 상설 기악 앙상블을 둘 정도로 재정적으로 풍부하고 음악적으로 앞서갔습니다. 빌라르트, 로레, 차를리노 등 주요 르네상스 작곡가들이 성가대장을 했었고 후에는 몬테베르디도 베네치아의 성악 대장을 지냈습니다. 안드레아 가브리엘리(1533-1585)와 그의 조카 조반니 가브리엘리(1555-1612)는 성 마르코 성당의 건축 구조를 이용하여 폴리 코랄 모테트-두 개나 그이 상의 합창단을 위해 작곡된 곡-를 발전시키고, 이는 바로크 음악과 오페라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이를 기악 음악에 적용, 베네치아 소나타, 칸초나 등을 작곡하고, 특히 "종교 심포니"에서는 셈여림 표시를 처음으로 기보한 것으로 순수 기악 음악을 형성돼 나가는데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