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된다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중세음악
지난번에 313년에 교회가 합법이 되었다고 언급했었지요?
동교회와 서 교회의 분열도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로마가 아닌 밀라노에서 일어났다고 제가 이야기했었나요?
흔히 313년의 사건을 밀라노 칙령이라고 부르지요.
즉, 당시에는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밀라노의 통치자가 온 유럽을 통치했지요.
그러니 당연히 교회 음악도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달됐겠지요?
그 시작이 바로 아래에 멋지게 서 계신 성 암브로시우스 교부세요.
Sanctus Ambrosius, 340~397
벌써 살다 가신 연도만 봐도
격변기를 보내신 분이라는 느낌이 확 오지요?
암브로시우스 주교님은 초대교회 4 대 성자 중 한 분 이 시기도 하지만요,
사실은 세례를 받으신 건 30살도 넘어서세요.
주교님은 로마의 고위직이신 아버지 밑에서
로마가 아닌 독일에서 태어났고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자신을 돌봐준
아버지의 친구분이 안치오 프로부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에
그 영향으로 로마에서 법률가로 성공 한 이후에 세례를 받고
세례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니
와우! 특권 절어요!!
ㅎㅎ 아마 신앙심이 너무 깊으셔서 인정받으셨겠지만요
사실 이 분이 대단하신 게
성 아우구스티누스라고 계시잖아요?
방탕한 생활을 하시다가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로 성인이 되신 분
그 성인께서 바로 이 암브로시우스 교부님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하루아침에 변하여 새사람 되셨다니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세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주옥같은 문장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든요!
성 어거스틴의 명언 중
어쨌든, 이 훌륭하신 성 암브로시우스의 성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또 한 번 놀랄 일은
이 훌륭하고 높으신 교부님께서
데살로니가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나니까
황제에게 절대로 폭력적 진압은 안된다고
바른말하다 미운털이 콱 박힙니다.
결국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국가의 폭정에 항의하시며
인권 을 강조하시는 아주 훌륭한 분이셨다 이거지요
교회 음악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셔서
직접 작곡을 하신 건 아니지만 교회 음악을 위해 열일을 하셨지요.
첫 번째로는 그동안 전해 내려오던 시편&유태교 전통의 교창 법(교독문을 노래로 한다고 생각하면 됨) 총정리하시고요
암브로시우스 찬가 작곡 대표작 <Deus creator Omnium>은 심지어 작곡도 하시고요
참 부지런히 사셨어요
밀라노 성가의 특징이라면
선창자가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Accentus라고 불리는 선창을 하던 것에서부터
영어의 accent 가 나왔다고 하네요.
주변의 동방 음악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유대 음악이 아주 잘 녹아져 있답니다.
"Kyrie"라고 아직도 미사에 꼭 들어가는 곡은 암브로시우스가 그리스 음악에서 베꼈따나 뭐라나..
하지만 밀라노 지방의 이 암브로시안 성가는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이 많지 않아 연구하기도, 연주하기도 무척 어렵고요
(당시에는 악보가 없었답니다)
게다가 1058년에 스테파노 교황이
모든 교회의 음악을 로마의 성가인 그레고리아 성가로 통일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참 그놈의 통일이 뭔지 각 지역들의 성가를 전멸시켰답니다)
암브로시아 성가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미사의 노래 순서,
"멜리스마"라고 불리는 트로트의 꺾기 비슷한 테크닉
그리고 교창 정도가 남아있다는데
학자들은 암브로시아 성가가 훨씬 월등했다고들 하지만
결국 힘센 사람이 이기는데
로마가 대세일 때 밀라노에서 성가곡을 내놓으신 암브로시오 주교님이 때를 잘못 만나신 거지요.
이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광개토 대왕께서
저어기 만주 벌판까지 장악하고 계시던 그때 그 시절인데
지금은 만주는 고사하고 남북으로까지 쪼개져 있으니
참 역사가 밉네요...
나를 다시 4세기 후반으로 돌리도!
중국 가서 4 세기 때 만주 우리 땅이었니까 내놓으라 하면
세계적 돌아이로 이름 좀 날리겠지요? ㅋㅋ
아 오늘 길고 늦었네요
여러분들 오늘 밀라노 향해서 인사 한번 해주시길!
밀라노는 성가까지 명품이네요... 짜증 나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