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여성편력
자코모 푸치니(1858-1924)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라보헴, 토스카, 나비부인 등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오페라를 쓴 푸치니는 이탈리아 루카에서 5 대에 걸쳐 음악을 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홉 남매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푸치니는, 영유아기는 루카의 음악감독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생활을 했지만, 그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며 어려운 시기를 보냅니다. 루카의 모든 음악가들은 그가 작곡가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작 푸치니는 말썽쟁이 학생이라, 그를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며 못 가르치겠다고 나가떨어지셨습니다. 하지만, 푸치니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넘쳤던 어머니 덕분에, 루카의 음악학원에 가까스로 입학, 다행히 그를 이해해주는 선생님을 만나 음악교육을 받으며 루카 성당의 오르간 보조 연주자로 음악 생활을 계속합니다. 이후, 푸치니 어머님의 치맛바람은 계속되어, 만 20세로 제한되어있는 밀라노 음악원의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나이를 속인 채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합니다. 스물여섯 살에 쓴 오페라 "빌리"를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데뷔한 푸치니는, 공모전에는 불합격했으나, 당시 최고의 출판사였던 리코르디에서 "빌리"를 출판함으로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이후 라보헴, 토스카 등 성공적인 오페라를 연이어 쓰면서, 푸치니는 로시니와 베르디를 잇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푸치니는 굉장한 멋쟁이에 얼리 아답터로 당시로서는 무척 비싼 자동차를 열두 대나 소유했다고 합니다. 돈 많고, 재능 있고, 멋진 푸치니에게는 많은 여성들이 따라다녔지요. 불행히도, 푸치니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친구의 부인이었습니다. 푸치니는 친구인 나르시스 제미냐니의 부탁을 받고 그의 부인인 엘비라에게 피아노 교습을 해 주었습니다. 유명한 바람둥이였던 나르시스 제미냐니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엘비라는, 매너 좋고, 멋진 피아노 선생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엘비라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푸치니의 집에 이사를 해 버리고, 두 사람은 아들 안토니오를 낳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푸치니는 한 여자에게 정착하기에는 바람기가 너무 많았을까요?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는 그를 감시하고 의심하며 늘 다른 여자들을 경계했습니다. 1903년, 엘비라의 남편 나르시스는 자신이 바람을 피우던 유부녀의 남편에게 살해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정식 결혼이 가능해진 엘비라는 푸치니를 달달 볶아 1904년 초, 두 사람은 공식적인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유부남이 된 푸치니는 여전히 한눈을 팝니다.
오페라 가수인 마리아 제리차(Maria Jeritza, 1887-1982), 에미 데스틴(Emmy Destin, 1878-1930), 세지라 페라니(Cesira Ferrani, 1863-1943), 해리클리아 다클리(Hariclea Darclée, 1860-1939) 같은 여가수들과 끊임없는 염문을 뿌렸으며, 나비부인을 작곡할 때는 일본 소프라노를 집으로 들이고, 부다페스트에 나비부인의 초연을 하러 갔을 때는, 유명한 헝가리의 작곡가인 어빙 렌드바이(Erwin Lenvai, 1882-1949)의 여동생 블랑쉐와 5년에 걸쳐 사랑의 편지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1911년, 푸치니는 블랑쉐와의 관계를 정리하지만, 가정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고 독일의 귀족인 스탕글 남작부인(Baroness Josephine von Stangel)과의 밀회를 시작해 6년 이상 지속됩니다.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는 이런 남편 때문에 무척 속을 끓였답니다. 그런 와중에 열여섯 살인 도리아 만프레디(Doria Manfredi)라는 어린 가정부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엘비라는 자신의 남편이 도리아와 불륜관계라고 확신하고는 도리아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몰아쳤습니다. 견디지 못한 도리아는 결국 자살을 하며 자신의 시체를 부검해 자신이 처녀임을 밝혀달라고 합니다. 부검 결과, 도리아는 처녀였고, 엉뚱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든 엘비라는 결국 법정에 서게 되고, 징역 5개월을 선고받았으나, 도리아의 부모와 합의를 해서 실제 징역을 살지는 않았답니다.
후대에, 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게 되는데, 엘비라가 푸치니와 결혼하며 데리고 온 의붓딸인 포스카가 결혼한 몸으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도리아에게 들키고 난 후, 자신의 일을 소문낼까 두려워 어머니인 엘비라에게 도리아를 모함한 겁니다. 그런데 푸치니도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은, 도리아가 아닌 그녀의 사촌 줄리아 만프레디(Giulia Manfredi)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리아와 푸치니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어 줄리아의 아이들은 푸치니와 엘비라의 아이들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만프레디의 가족들은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푸치니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각종 재산 분할과 법적 분쟁을 우려한 푸치니와 그의 가족들은 만프레디 가족의 주장을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푸치니는 담배를 하루에 2갑 이상 피우는 애연가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후두암으로 진단받지만, 그의 상태는 그의 아들 안토니오 이외에는 누구도 몰랐습니다. 푸치니의 주치의는 그를 가장 최신 의학인 방사선 요법을 행할 것을 권유합니다. 당시 방사선 요법이 가능한 곳은 벨기에의 브뤼셀밖에 없었기에, 푸치니 가족은 브뤼셀로 가서 항암치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푸치니의 건강은 호전되지 않고, 이듬해 11월,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푸치니는 일단 밀라노의 지휘자 토스카니니 집안의 무덤에 안장되었으나, 2 년 후 아들인 안토니오에 의해 자신이 사냥을 위해 1901년에 루카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에 지은 "Villa Museo Puccini"의 교회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습니다.
푸치니의 여성편력은 음악계와 문화계에 유명하여 2008년에 푸치니의 여인(Puccini e la fanciulla)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니, 그 아내였던 엘비라를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가네요. 과연 위대한 예술은 끝없이 사랑을 해야 하는 열정에서 나오는 걸까요? 자신의 오페라 줄거리보다 더한 막장인생을 사신 푸치니 선생님, 언제나 현실은 드라마보다 혹독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