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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영화와 현실은 많이 다르네요..

제 부모님은 여유가 있으신 편입니다. 무슨가의 누구처럼 재벌은 아니시지만, 아버지는 꽤 성공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셨던 듯합니다. 강남이며 대장동 같은 막 개발이 되어 잭팟이 터지는 엄청난 땅들은 아니지만 노후에 농사짓는 게 꿈이셨던 만큼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사셔서 벼농사며 밭농사며 지으시는 곳들이 투자 대비 작황은 엉망이지만 대한민국 전국의 땅값이 올라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꽤 알짜배기 자산가가 되셨습니다. 취미라고는 아이들 공부시키는 것과 교회 봉사, 그리고 여기저기 매주 농사 핑계로 일하러 다니시는 것입니다.




십여  전쯤, 자산관리 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벌이도 짭짤하고, 남편도 제법 고액의 연봉을 받던 터라 얼마간의 종잣돈을 마련하고 노후를 준비하려고 제법 유명하다는 자산관리사와 상담을 했었는데, 저의 이야기를  들은 자산관리사는 “ 테크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노후대책이라며 가만있으라 하더라고요. 주식도 안돼, 무엇이든 사면 팔면  , 펀드도 안돼, 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전부  제하고 나니   있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종잣돈 아버지 드렸습니다. 부모님 말씀  듣고 투자니 사업이니 이런 것은 생각도  하고 본업인 바이올린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자식 공부시키고 남편 병치례   한없이 뒷바라지 하고 아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효도 여행 중.. 남편과 부모님과는 무척 여행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저는 늘 말하곤 합니다. 금수저는 아니라도 금도금 수저 정도는 물고 태어났는데, 이제 도금이 거의 다 벗겨졌다고요. 다시 도금 한번 해야 할 텐데 아버지가 금을 안 주신다며 웃곤 하지요. 여하간, 10여 년 전 “효 테크”를 결심한 저는 친정 부모님께 빌붙어 살며 세 식구가 각자 병치례를 하며 말썽을 피워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시간도 여유도 없이 정신 바짝 차리시고 건강하게 사시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제는 딸아이까지 “효 테크”에 가세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요양원 안 보내고 끝까지 자기가 부모님 댁에서 모실 거라며 할머니 할아버지 혼을 빼놓습니다. 혼자된 엄마는 귀찮다고 시집가라면서... 역시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어린이입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첫사랑은 역시 첫 딸인 저인 것 같습니다. 자식 4남매 중에 가장 귀한 것을 저에게만 주셨으니까요. 부모님들께서 자신의 부모님들에게서 받으신 것들이니… 정말 저는 맏이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덧 같습니다. 물론 아버님의 무한 긍정 에너지와 미모, 어머님의 공부에 대한 악착같음과 알뜰한 살림 솜씨는 저희 4 남매가 골고루 물려받았지만, 그래도 혼자된 제가 아픈 손가락인 건지, 아니면 데리고 사셔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두 분 다, 당신의 부모님들께 받은 가장 귀한 것들을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위대한 유산이지요.



그게 무엇이냐고요? 그게 황해도의 지주 소리 들으시던 친할아버지가 이북에 남겨놓고 오신 땅덩이라던지 학식과 명망이 출중하셨던 평양 신학교 출신의 외할아버지가 일구신 대형 교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못 뵌 두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손자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은 가장 엄청난 것을 저에게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짜 찾아보기도 힘든 여자 탈모인으로서의 삶입니다.


워낙 탈모 유전자는 대를 거른다고 해서 남동생들과 사촌들은 신경을 무척 썼었습니다. 사실, 친가 쪽 할아버지들은 5형제가 전부 진짜 사나이 황장군 같이 완전 탈모셨고, 외할아버님도 황장군 스타일이셨습니다. 친가 쪽으로 아버지의 사촌들-저희 오촌 당숙들-중 몇 분이 조금 헤어라인이 밀리시거나 속 알 머리가 비어 보이시는 분들이 계셨지만, 그 5형제의 20여 명 되는 자손들 중 황장군 스타일은 아무도 없으셨습니다. 제 할아버지도 5남매를 두셨고, 제 형제들과 사촌들까지 14명의 손자 중 저만 유일한 탈모인입니다. 심지아 14명 중 여자는 4 명 밖에 없는데, 10명의 남자들의 탈모 확률이 더 높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외가도 그렇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제가 머리를 너무 써서 탈모가 됐다 하는데, 그럼 의대 교수인 사촌오빠는 왜 머리가 남아있습니까? 심지어 외가는 저와 제 여동생 빼고는 다 남자들인데.. 그저 헤어라인이 조금씩 밀립니다. 외삼촌께서 당신이 탈모인이라고 우기시지만, 제가 그냥 웃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여자 대머리입니다. 원형 탈모가 커졌다고 아무리 우겨봐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합니다. 앞이 훠언합니다. 동네에서 나갈 때에도 모자나 가발을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니, 지난여름, 너무 덥고 우울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집에서 저 자신을 가두었었습니다. 그러며 곰곰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스트레스성 탈모라기에는 너무 심한 나의 탈모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러다 할아버지 기일이라 어머니가 사진을 꺼내시는 것을 보고 유레카! 그렇지, 할아버지들이 탈모셨지!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의 탈모는 스트레스가 아닌 유전이라는 것을! 양쪽 집안의 우성 유전자를 모두 받고 태어난 나에게 할아버지들께서는 탈모 유전자까지 물려주신 겁니다. 김 씨 집안 장손의 큰 딸이자 외할아버지께서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며 기도하며 낳으신 귀한 둘째 딸 어머니의 큰 딸에게 말입니다.




무슨 복에 양쪽 집안의 그 엄청나고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저도 그냥 정말 삭발하고 맘 편히, 개성있게 살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옆의 분들이 너무 불편해하실 것 같더라고요. 시집보낼 딸도 있는데 교회 다니면서 머리 밀고 한복 입고 혼주 자리 앉아 있는 그림은 제가 생각해 봐도 코미디입니다. 그래서 그냥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고, 잘 가리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들을 뵙지만요. 탈밍아웃 하면, 엄마 재혼 못한다고 딸아이는 난리를 치지만, 저는 제 조상들이 물려주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에, 혹시라도 저희 할아버지를 아시는 분들이 아직 살아 계신다면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자손들 중에서 할아버지 제일 많이 닮았어요!


이러고 다니고 싶지만...



저의 효 테크는 부모님께 돌아가신 아버님 모습들을 아침저녁으로 생각나게 해 드리는 것 까지 합니다. 심청이가 울고 갈 만하지요? 위대한 유산을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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