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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보았다

올해는 지상파에 방영되지 않는 드라마들이 인기네요. 월화수목 밤 10시면 드라마를 본방사수하고 밤을 준비하던 저에게는 그다지 익숙지 않은 극장식 드라마들이 입소문을 타며, 오징어 게임을 겨우 완주했는데 이번에는 또 지옥이라네요. 참고로, 부산행도 보지 않은 저에게는 무척 어색한 매체입니다. 구독 서비스는 익숙지 않지만, 그래도 젊은 딸아이가 이것저것 신청해 놓아 넷플릭스 어카운트도 있는지라, 외국인들도 공감한다는 지옥을 완주했습니다. 



뭐 내용이야 다른 분들도 다 보셨을 테니 익숙하실 테고, 저도 천국 가기는 모자라고 그래도 지옥 갈 정도로는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출연자들의 연기가 공감이 돼더군요. 신의 뜻은 심오하기에, 마지막에 출연한 어린아이를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살려주는 장면은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부모가 지옥행을 택하고 살아남은 아이의 삶은 어찌 될까요? 온갖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자라날 그 아이의 성장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끌려간 지옥의 벌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의 앞날도 꽃길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일까요?



알쏭달쏭 지리산



지옥을 보며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 번에 쭈욱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방송은 15분을 단위로 끊어갑니다. 뜬금없는 1분 30초의 광고가 방송국들에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남겨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무척 짜증이 납니다. 처음에는 1번으로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드라마는 2번의 광고, 예능은 3번까지도 광고를 하더군요. 일주일에 1번 혹은 2번 하는 드라마는 요즘 같은 콘텐츠 풍년에 도대체 지난 회 스토리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겨우 생각날 만하면 광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다음 신이 시작해 또 스토리를 상상하며 이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에게 생긴 버릇은 본방 사수하고, 다음날 다른 유료 서비스로 다시 보곤 합니다. 그런데도, 회차마다 이전 회차의 스토리를 설명하느라 1,2 분을 할애하니, 이거 또 흐름이 끊기더라고요. 요즘 방영되는 "지리산"이라는 드라마가 저에게는 가장 어렵습니다. 좋은 배우들과 스토리, 그리고 지리산이라는 배경으로 아주 좋은 드라마 같은데, 일단 2021년과 2019년을 왔다 갔다 해서 헷갈리는 데다가, 자꾸 옛날이야기를 해서 메모해 가며 보는데 본방을 안 보자니 궁금하고, 보자니 광고가 짜증 나서 늘 본방 틀어놓고 딴짓을 하다가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몰라 헤매기 일쑤입니다. "지리산" 이야말로 OTT 플랫폼에서 개봉을 했다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모래시계" 세대입니다. 귀가 시계라고 불렸을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배우가 이름을 날리게 된 드라마이지요. 시청률이 어마어마했던 걸로 압니다. 거의 전 국민이 시청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물론 방송국이 3 개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90년도부터 2000년대 초중반 까지, 많은 좋은 드라마들이 여러 장르에서 선보였고, 저는 그 드라마들을 시간 맞추어 본방사수하기 위해 아이도 일찍 재우곤 했지요. 지금의 오징어 게임, 지옥, 부산행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를 시청하며 언젠가는 나도 저런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 하고 꿈꾸신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올려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상 3 파 방송국은 아직도 월화, 수목, 금토, 주말 드라마라는 제목을 달아 중편 드라마를 제작하고, 일일 드라마와 아침 드라마까지, 정말 많은 드라마가 있는데, 시청률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시청률이 너무 낮아 모자라는 제작비를 조달하려 중간 광고를 넣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중간 광고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심지어 지상파 방송까지도 OTT 플랫폼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제가 가입하고 있는 플랫폼들입니다. 이제 디즈니가 들어온다고 딸아이는 디즈니를 구독하더군요. 물론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1 위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해외 드라마 및 영화입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콘텐츠들도 시청하게 되면서 세계화되는 것은 좋지만, 결국 우리 것은 빠지고 다른 나라들의 드라마나 영화만을 보는 시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살짝 해 봅니다. 계속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데, 그것이 우리네 감성이 아닌 세계화된 관점에서만 나온다면, 결국 우리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잃는 것 아닌지 문화 식민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아주 리버럴 한 저도 살짝 우려가 되네요. 우리 것을 잃는다면, 그것이 지옥 아니겠습니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50 수년을 살았는데, 벌써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 북한은 아이를 낳아 탁아소에 맡기고 엄마들은 일을 나간다고 하며 손가락질했었는데, 요즘은 좋은 어린이 집 보내려면, 임신하자마자 대기 번호 받는답니다. 당연히 집에서 모셨어야 할 부모님은 요양원에 가시고, 명절이면 곱게 차려입던 한복은 고궁에 무료로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빌려 입는 옷이 됐습니다.  한복 치맛자락을 왼쪽으로 여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제가 어릴 적, 처음으로 혼자 한복을 입고 나오니, 할머니께서 치마끈을 고쳐 매어 죽시며, 워낙 한복 치마는 왼쪽으로 여미어야 오른손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치마를 오른쪽으로 여미면 기생이라고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게 편리한 요즈음, 꼰대 같은 말일 지도 모르나, 전통과 문화는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닐까요? 




이제는 온 집안 식구가 모여 앉아 드라마를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그런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외면은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고 수익을 늘려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방송국들의 시도는 좋았으나 그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을 다른 외부 콘텐츠의 노출이 손쉬운 OTT 플랫폼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적어도 50분만큼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려줄 그런 방송국은 없는지, 참 아쉽네요. "지옥"에서 괴물들이 빼앗아 간 것이 그들의 육체뿐 아니라 전통, 문화, 예술 등 우리만의 콘텐츠를 앗아 간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점점 개인화되고 서구화되는 우리들에게 이미 지옥문은 열린 게 아닌지, 세계 1 등을 한 콘텐츠를 보고도 뒷맛이 씁쓸한 건 저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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