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이제 그만
남편이 천국으로 떠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남편이 떠난 직후에는 출장이 많던 남편이 그냥 긴 출장을 떠났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듯합니다. 악몽을 꾸는 듯, 그저 깨어나면 다시 그가 돌아올 것만 같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지나간 듯합니다. 1년이 지나고, 두 번째 해가 되니, 현실이 다가오더군요. 이제 그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고 있기조차도 벅찬 저에게 다가오는 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혼자더라고요.
물론, 저는 혼자는 아닙니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함께 사시면서 살뜰히 챙겨주시고, 대학원을 마친 딸도 아직 독립하지 않고 옆에 붙어있어 외롭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식구들이 오글오글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밑의 여동생 하나는 옆집에 살고, 다른 두 남동생들은 본가를 "친정"으로 부르며 들락거려, 매일 밥상을 서너 번씩 차립니다. 어쩌면 이런 환경 덕분에 남편의 부재가 조금 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방에 들어와 혼자 잠을 청하려면, 외로움이 밀려들곤 합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오롯이 혼자 보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지는 건, 왜일까요?
Sophomore Blues 란 새로운 일을 시작한 후 2년째에 갖게 되는 부담감을 말합니다. 운동선수들이나 대학생들이 2년째 부진한 성적을 내면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지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첫 해가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다면, 두 번째 해에는 외로움도 느끼고 주변의 기대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의 기량에 못 미치는 성과나 성적을 낸다는 성장 과정의 일부라는 거지요. 저는 대학 새내기가 되지도 않았고, 직장이 바뀌지도 않았지만,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보낸 남편을 떠나보낸 후, 인생의 새 장을 열었기에 그 두 번째 해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글을 쓰며 위안을 받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 집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고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몸도 까딱하고 싶지 않아 방에서 누워서 뒹굴거리기를 몇 달, 미친 듯 수업자료를 찾기도 하고, 뜨개 가방을 열심히 뜨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 남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만 있다면 빠져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 남편이 함께 할 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들이, 남편을 보내고 나니. 아무 가치가 없이 생각되더라고요. 남편이 없으면 바이올린 연습도 많이 하고 부모님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글도 마음대로 쓸 줄 알았는데, 정작 저는 제 방안에 저를 가두고는 그저 울고만 있었습니다. 여든이 넘으셔도 아직도 티격태격하시면서 재미나게 사시는 부모님이 그저 부럽고, 연애 중인 딸아이와 그 남자 친구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나가는 것도 남편과 저의 연애 시절을 회상하며 슬퍼지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남편과 너무너무 금슬이 좋던 잉꼬부부는 아니었습니다. 부부라기보다는 그저 30년을 함께 산 동지이자 친구였습니다. 언제나 제가 사고를 치면 그가 수습해 주곤 했는데, 이제 저 혼자서 모든 것을 수습하며 살려니 힘이 들고 서럽더군요. 남편이 가장 그리울 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입니다.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연기자들이 머리가 웃긴다, 옷이 멋있다 뭐 이런 잡담이요. 머리를 자르러 가라고 잔소리를 하고, 딸 야단 그만 좀 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이제는 할 수 없습니다. 살짝 부모님도 흉보고 딸아이 때문에 속상한 일도 털어놓고 할 상대가 없다는 것, 머리가 더 빠졌다 아니면 새로 난다 하고 저에게 관심 가져 주고 세심히 살펴보는 이도 없고, 드러누워만 있다고 산책이라도 함께 나가자고 귀찮게 구는 사람도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제가 귀찮아하던 그 모든 일들이 그리워질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슬퍼지더군요. 그것이 행복일 줄은 진짜 몰랐거든요. 나라를 구한다거나 제가 속한 조직에서 감투를 맡아 존경받는 것들이 행복이 아니라,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소소한 일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왜 저만 몰랐을까요?
조금만 더 있으면 남편의 2주기가 돌아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도, 저를 보고 몰래 속앓이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엄마 정신 차리라고 소소한 사고를 치는 딸아이의 뒷수습들을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이제 방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머리는 그리 말하지만, 가슴은 아직도 저릿저릿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남편을 마음 편히 보내기 위해서라도, 옛날보다 더 씩씩하고 재미나게 그를 만나는 그날까지 살아보려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가 힘들었던 지난 몇 개월간을 생각하면, 이 글을 올리며 저는 다시 저의 소소한 일상과 재미난 음악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며 천국의 남편에게서 잠시 떠나 이승에 살아보려 합니다. 지독한 슬럼프를 겪은 만큼, 더욱더 활기차고 건강한 나날들을 보내려 합니다. 그를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면서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가끔 뒤돌아 서서 훌쩍거리는 저를 마주치신다면 그냥 슬쩍 모르는 척 외면해 주세요. 슬픔을 이겨내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