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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 친정에 다녀왔다. 저녁에 남편과 사촌 여동생을 만나기로 했는데 가기 전에 일찍 나와서 잠시 들린 거였다. 미리 말씀드리면 기다리실까 봐 당일 아침에서야 할머니께 전화로 집에 간다고 말씀드렸는데 할머니는 그 사이에 손녀딸 기침하는 게 걱정되어 도라지차를 끓여놓으셨단다.
영등포역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 20년을 넘게 살던 곳이니 단지 익숙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길 없이 그냥 숨 쉬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알아서 걷는다. 대문은 꼭 내 열쇠로 내가 열고 싶어 난 언제나 와도 되는 곳이니까. "나야~"라고 할머니한테만 할 수 있는 버릇없는 인사, "나"가 누군지 말 안 해도 다 알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방문을 활짝 열고 반겨주셨다. 오자마자 내가 다시 언제 돌아가야 하는지 시간부터 물으시고, 시간 안에 도라지자를 식혀서 병에 담아주시려고 도라지차 양동이를 담가 둔 대야의 찬물을 몇 번이고 갈아 부으셨다. 이거 다 못 가져갈 텐데, 무거워서. 아니야, 할머니. 나 다 들고 갈 수 있어. 이거 먹고 얼른 기침 떼 버려. 기침 오래 가면 안 좋아. 응, 응, 할머니.
결혼을 앞둔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계란찜을 해주셨다. 난 그날 약속이 있어 나가야 했는데 할머니는 밥 거르면 병난다고 저녁 챙겨 먹고 가라고 해주신 거였다. 약속에 갖고 가야 할 물건에 문제가 생겨서 나가야 할 시간이 더 앞당겨졌고 나는 초조한 마음에 할머니 계란찜 언제 돼 라고 물었다. '난 지금 빨리 나가야 하는데 할머니 계란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내 질문은 그렇게 들렸을 테고, 할머니와 난 투닥였다. 그럼 그냥 가. 왜 나 밥 먹고 갈 거라니까. 내가 이걸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거냐, 너 먹으라고 하는 거 아니냐. 그래, 알아, 나 밥 먹고 갈 거라니까. 어휴, 성질나. 왜 그래, 할머니. 빨리 익으라고 숟가락으로 마구 들볶아진 계란찜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할머니가 그러셨다. 너 그냥 갔으면 이거 그냥 버릴 거였어. 나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엉엉 울었다.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푹푹 떠먹으며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왜 그래 내가 다 먹고 간다니까 이걸 왜 버려. 할머니는 무안해지셨는지 왜 애같이 우냐며, 할머니가 속상해서 그랬지, 우리 손녀딸 주려고 한 건데 안 먹고 간다니까 속상해서 그랬지, 나를 달래주셨다. 나는 끅끅 대며 계란찜 한 뚝배기를 다 먹었다.
이틀째 할머니가 주신 도라지차를 꼬박꼬박 끓여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