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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Nov 01. 2020

30년 채식해도 비건은 힘들더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나는 30여년 육고기만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으로 살아 왔지만, 사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하듯 생선과 해물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갑각류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나도 가끔 비건을 해볼까? 생각을 했던 적이 없지는 않다. 왜였을까, 그냥 이왕 이렇게 사는 김에 엄청 엄격한 식단을 해 보면 어떨까, 그 정도의 마음이였던 것 같다. 계속 말해왔듯 나는 별다른 신념은 없는 사람이라 뭔가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매체에서 비건, 비건 하니 한번 해볼까?’ 정도의 마음이었다. 사실 평소 내 식단을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카페라떼 안 먹고, 가공식품 먹을 때 주의하고, 계란을 안 사면 되니까. 생선이나 해물은 매일 먹지 않고 가끔만 먹었기 때문에, 대부분 식사는 계란과 우유(주로 카페라떼로 섭취하는) 빼면 동물성 식품이 없었다. 별로 생각하지 않고 동물성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지나간 날도 아마 꽤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에 비해 내가 분명히 더 쉬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비건으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가공식품은 어지간하면 다 동물성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냥 안 먹어야 한다. 그리고 비건은 실질적으로 외식이 힘들다. 그 말은,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시간에 사람들과 밥 먹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육고기 하나 안 먹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사회의 시선을 견뎌내기 힘든지 30여년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다녀야 하는데 그럴 정도로 내가 마음을 그다지 굳게 먹지는 않았었다. 매 끼니를 가공식품 없이 내가 도시락을 싸다니고 집밥을 먹는다는 그건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이제 앞으로 평생 갑각류를 안 먹는다는 것도 내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간혹 “딱 일주일만 비건 체험 해봐야지!”정도의 버킷리스트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본격적으로 하려면 하루 정도만 해보고 그만두고는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는 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는 ‘채식 지향’과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 : 육류 또는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어서, 나는 ‘비건 지향’정도로 살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고, 완벽한 채식도 추구하지 않고, 그저 할 수 있는 한 조금 동물성 식품을 줄여 보려고 한다. 회사에서는 이제까지처럼 먹더라도, 하루 한 끼 정도는 채소 위주로 스스로 해 먹고,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두유 라떼를 먹고, 우유와 계란을 덜 사는 정도로.     


‘채식 지향’의 삶은, 다이어트 유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참 살을 뺄 때는 식단도 엄격하게, 운동도 엄격하게 하더라도 유지 단계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한 정도로 과하지 않게 먹고, 더 찌지 않게 조절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 ‘채식 지향’도 이와 같아서, 평소에는 채식 위주로 먹되, 동물성 식품이 먹고 싶으면 과하지 않은 선에서 먹고, 과식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편안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편한 기준으로 조금씩만 해보려고 한다.     


왜 하느냐 하면, 사실 별로 대단한 신념은 없다. 그냥 점점 채식이 내 체질에 잘 맞는다고 느낄 뿐이다. 소화력이 떨어진 탓일지도 모른다. 사실 조금이라도 환경에 기여가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이기도 하다. 최근 쓰레기 덜 만들기에 관심이 생겨서, 플라스틱 통에 담긴 액체샴푸 대신 샴푸비누를, 주방세제 대신 설거지비누를 쓰고 있고, 분리수거도 조금 더 열심히 해보려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직 대단하게 뭔가 바꾸지는 못 했지만, 작은 것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다보면 언젠가 큰 것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혹시 채식의 삶을 시도해보려는 사람, 비건으로 살아보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엄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해 보면 어떨까? 삶은 길고, 삶의 양식도 다양한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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