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기 좋은 사회
고기를 안 먹으면 특이한 사람, 까다로운 사람, 신기한 사람이 되고 많은 편견어린 질문을 받는다. 약 30년 동안 이런 저런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90년대, 2천년대까지는 변화가 거의 없다가 최근 몇 년 간 질문이, 그리고 채식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자신이 페스코인지, 비건인지 공개적으로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연예인들도 꽤 보이고, 비건 화장품이나 비건 의류 등 전반적으로 채식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채식이 종교나 건강상의 이유로 선택하는 개인적 차원의 이슈였다면, 최근에는 이게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고 보인다. 즉,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의 하나로 채식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채식이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사회에 참여하는 행동’의 하나로 선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의 채식은 사회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채식이 사회적 의미가 달라지고, 그래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채식 실천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점점 시장이 커지고, 그래서 요즘은 심지어 이마트에서 채식 만두와 채식 라면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받는 질문도 ‘그럼 설마 생선도 안 먹어?’에서 ‘그럼 무슨 단계의 채식주의자야?’라는 질문으로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그저 어려서부터 개인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고 있는 나는 ‘채식주의자’라는 이미지가 내게 씌워지는 것이 싫어 ‘나는 채식주의자 아니야’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채식주의자’들이 일종의 사회운동으로서 채식을 열심히 전파하고 실천한 덕분에 나는 그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나는 이런 사회적 변화에 보탬이 되진 않을 거 같은데 그 결과물을 누리고 있구나 싶어 빚진 기분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의 변화는 아직은 서울 중심적이기는 하다. 나는 지방에서 오래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는데, 시대의 변화도 있겠지만 지역의 특성도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트렌디한 채식 음식점, 채식 모임 등은 아직 서울에 있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상권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서울은 확실히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인구가 많고 밀집되어 있으니 세분화된 입맛에 맞춘 상품을 내놓아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방은 아직 그런 소수의 입맛에 맞춘 상품을 전면에 내세워서 성공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지방은 서울보다 어쩔 수 없이 변화의 속도가 조금은 느리다.
그리고 지방은 서울에 비해 집단 중심적인 경향이 더 강하다. 물론 이것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르겠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경향을 보자면, 서울은 비교적 좀 더 개인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지방은 모두가 가는 비슷한 방향에서 벗어났을 때 이상하게 보고 불편해할 확률이 서울보다 조금 더 높달까. 그래서 지방에서 채식을 유지하기가 서울보다는 조금은 더 어렵지는 않은가 싶다.
채식은 표면적으로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의 문제이지만, 실은 ‘사회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하느냐’의 문제가 더 크다. 채식을 했을 때 어떤 질문을 받게 될 것인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회식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 관계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 이런 문제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 있느냐가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10년 전보다는 지금이, 지방보다는 서울이 채식을 유지하는 데에 더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채식을 하시는 분들이 마주할 어려움, 외로움은 너무 잘 안다. 그분들 중에는 아직 주변에 채식하는 분이 자기 말고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점점 달라지지 않을까? 20년 전의 내가 지금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