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휘 Nov 08. 2020

채식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채식 시장이 커지고 채식이 친환경적 삶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면서, 자발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직 내 주변에서 “나도 채식 해 보려고! 해 보니까 어때?”라고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 했지만, 인터넷에 ‘채식 0일차, 채식 0년차’등의 글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채식을 많이 하시는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채식을 선택한 그분들과, 별 생각 없이 너무 어릴 때부터 고기를 안 먹고 있는 나는 상황이 다르다. 나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채식을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나는 고기 하나 안 먹는 것으로 겪어온 많은 편견이 힘들었고, 사회에서 이상하게 겉도는 기분이었다. 늘 나는 특이한 사람이었고 늘 스스로를 설명해야 했다. 먹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몇십 년 동안 계속 같은 질문을 듣고 대답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을 계속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채식을 권하지는 못하겠다.     


계속 말해 왔지만, 채식은 무엇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그런 식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사회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느냐,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 하는 문제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듣는데, 매번 듣는 질문이라 귀찮아서 시큰둥하거나 쌀쌀맞게 대답하면 ‘채식한다고 까칠하네’라는 인식을 줄 수 있고, 회식 할 때 조심스럽게 ‘제가 고기를 못 먹어서......’라고 이야기할 때 순식간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죄인이 된 듯 눈치를 봐야 한다.      


무슨 피해의식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30여년간 이런 저런 상황들을 겪어왔다. 그래서 솔직히, 혹시 자신의 자녀를 채식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그렇게 식생활 교육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주제넘지만 말리고 싶다. 자녀가 적극적으로 채식을 선택한다면 물론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고기 하나 안 먹는 것만으로 그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생활 할 때 받게 될 편견과 자기 증명의 스트레스가 성격 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동기의 신체적 성장,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수 있다.(나는 고기를 안 먹고 자랐지만 건강하다) 그러나 급식에서 먹을 게 없는 날이 빈번하고, 또래 친구들이 우르르 핫도그나 햄버거를 먹으러 몰려다닐 때 끼지 못하는 그런 경험은 마음에 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성인이 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채식을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채식을 지금 시작하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은 참 하기 좋은 때니 너무 겁먹지 말고 적당히 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의 사회 변화는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는 데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비슷한 사람이 많아졌다. ‘저도 고기 안 먹어요!’라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10년 전보다는 높다는 뜻이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큰 힘이 된다. 뭐랄까, 매일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어?’라는 소리만 듣다가 ‘내가 이렇게 살아도 살 수 있구나’라고 느끼는, 그런 느낌이다.      


채식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못 먹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먹을 수 있는 것’ ‘맛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채식인들을 볼 때는 ‘못 먹는 것’에 집중한다. “아니, 고기를 못 먹으면 뭘 먹어?”라고. 그러나 혹시라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건 00들어갔으니까 못 먹어, 저것도 못 먹어’라고만 생각하면 채식을 할 의미도 없고 지속하기도 어렵다. ‘구운 채소 정말 맛있다!’ ‘커피에 아몬드 우유 넣으니까 딱 맛있네’처럼, 자기 입맛에 맞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못 느꼈던 다양한 맛들도 좀 더 소중하게 음미해보면서, 한 끼 한 끼 소중하고 행복하게 맛있는 것을 먹는 삶을 즐기시라.     


요즘은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 : 육류 섭취를 줄이는 사람)’이나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고기를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하는 사람)’도 채식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니, 꼭 비건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채식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못(안) 먹는다’에 집중하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사실에 집중해서 하면 좋겠다.      


꼭 비건이 아니어도 된다.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좋다. 꼭 동물 윤리와 친환경적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하고 있고, 흔히 생각하듯 하나의 입맛, 하나의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이 절대 아니다. 느슨하게 잠깐 발만 걸쳐도 좋다. 그래도 된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