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휘 Nov 17. 2023

나는 동물을 먹을까, 고기를 먹을까

단절될수록, 무감해진다

현대의 축산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와, 살아있는 생물로서의 ‘동물’이 단절되어 있다. 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살아있는 소나 돼지, 날아다니는 닭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나도 고기가 동물이라는 걸 별로 생각해본 적 없다. 고기 자체가 나에게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별 관심이 없었달까. 그런데 굉장히 ‘이게 동물이구나’라고 확 깨달은 경험이 몇 번 있다.


어느 날 공용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었는데, 커다란 뼈다귀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누가 동물을 죽이고 몰래 뼈를 넣어둔 건가? 그 커다란 뼈에 너무 충격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족발 뼈 아냐? 족발 시키면 뼈 위에 고기 올려 주잖아’라고 하는 것이다. 족발을 한 번도 시켜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으니 족발 뼈를 본 적도 없었다. 세상에, 이 다리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거구나. 


큰 족발뼈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때로는, 치킨을 먹고 그 닭뼈를 원래의 닭 모양으로 배치해놓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뼈를 보면 ‘이게 고기가 아닌 동물이구나’ 깨닫게 되면서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뼈 한 도막에서는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하나의 온전한 모습에서는 동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마크 저커버그는 직접 도축을 한다고 하더라. 그 생명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서.

누구든, ‘피와 살이 있고 움직이는 동물’을 자기가 직접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트에서 포장된 식재료에서는 ‘한 때 생명이었던 것’임을 전혀 눈치챌 수 없다. 대체로 살아있었을 때의 모습이 사라진 채로 어떤 덩어리로 놓여져 있다. 


어쩌다가 음식이 생명체였다는 걸 느끼게 되면, 그건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예를 들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접할 수 있는 병아리가 들어 있는 달걀이라거나, 머리와 발이 그대로 붙은 채 털만 뽑힌 닭이 시장에 걸려 있다거나 하는 건, 한국인에게는 대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다. 간혹, 외국인이 한국에서 ‘통째로 구워 나오는 생선’을 보고 끔찍하게 느낀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의 감수성으로는 개나 고양이는 사랑하면서 소나 닭은 먹는 게 이상하다. 그냥 똑같은 동물일 뿐인데 왜?  그러나 나도 이상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고기의 뼈는 너무 무서우면서, 통으로 구워진 생선을 기가 막히게 젓가락질을 해서 살을 발라 먹고, 새우도 통째로 까서 먹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육지 동물은 나와 가깝다고 느끼고 바다 동물은 나와 멀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특정 동물은 나와 가깝게 여기니까 소중하고 다른 동물은 별로 가깝게 느끼지 않는 감수성’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인 감수성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친절하게 대하고 먼 사람이라면 무심하니까,     


<인권의 역사>라는 책 말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잠깐 아파한 다음 잘 자지만, 다음 날 자기의 손가락 끝이 하나 잘린다는 말을 들으면 밤새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존재라고. 사실 그렇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면 그냥 쉽게 눈을 감아 버린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와 전혀 무관한 데에까지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성인군자 정도이지 않을까.     


그러니 개나 고양이 같은 나와 가깝고 친근한 존재를 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끔찍하지만, 소나 닭은 그 정도로 나와 관계가 있지 않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동물을 마주칠 일도 거의 없고, 도축 과정을 볼 일도 없으며, 거의 ‘포장된 고기’를 보통 마주치게 되니까. 심지어 요즘은 직접 썰고 다지며 음식을 하는 일도 별로 없으니 ‘고기’도 아니고 ‘요리’로서, 식탁 위에 올라온 상태로 보게 된다. 우리의 세상에서 ‘생물로서의 동물’은 사라지고 ‘고기’만이, 요즘에는 ‘음식’만이 보일 뿐이다. 이게 나와 가깝다고 느끼기는 어렵겠지.     

우리는 깔끔하게 포장된 음식, 포장된 땅, 쾌적한 도시 속에서 살면서 피가 나고 냄새가 나고 흙이 잔뜩 묻어 있는 생명체들과 단절되었다. 우리는 생명체가 아닌 상품을 매일 마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상품이 한때 생명이었다는 사실에 무감해진다. 전염병이 돌아 가축이 생매장당해도 우리는 그것을 직접 보지 않는다. 기후 위기라고 해도, 도시의 실내는 덥고 추운 것도 없다. 그래서 환경 문제는 아무리 생존 문제라고 전문가들이 외쳐도, 와닿지 않아서 살던 대로 살 뿐이다. 우리는 지구와 연결되고 세상을 확장하는 방법을 하나 잃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