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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12. 2018

여행의 필수 코스, 슈퍼마켓


엄마, 

암스테르담에 온 뒤 지금이 가장 신나 보이는 거 알아? 



엄마는 오늘 알버트 하인 (Albert Heijn)이라는 슈퍼마켓과 사랑에 빠졌어. 알버트 하인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슈퍼마켓이야. 전국에 1,000개가 넘는 매장이 있으니 네덜란드 사람들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 


우리 숙소에서는 걸어서 1분 거리에 있어. 처음 이곳에 찾아올 때 건물 밖에서 보면서 알버트 하인 내부를 구경했던 게 생각난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오른쪽으로 보이는 유리창 너머에 음료수 선반이 한가득, 시리얼 선반이 한가득, 그랬잖아. 거의 한 블록을 다 차지하는 크기였던 것 같아. 그땐 속으로 '무슨 매장인데 이렇게 클까? 식재료 도매로 파는 곳인가...' 싶었는데 그냥 엄청 거대한 슈퍼마켓이었던 거지! 오오옷! 



알버트 하인의 매력은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슈퍼마켓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싱그러운 꽃다발이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거든. 역시 꽃의 나라 답지! 게다가 가격도 엄청 착하더라. 우리나라에선 저 정도 크기의 꽃다발이면 5만 원은 할 텐데, 여기선 튤립 한 다발에 4.5유로 밖에 안 하는 거야! 우리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 입구에서 이렇게 예쁘고 값싼 꽃다발을 팔면 나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자주 꽃을 사서 화병에 꽂아두었을 것 같아.


한참 그렇게 꽃구경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 코너가 눈에 들어와. 나는 특히 이곳의 샐러드 코너가 좋았어. 어찌나 다양한 종류가 있던지! 눈이 저절로 팽글팽글 돌아가더라. 한국 마트에서는 아주 적은 양에 비싸게 파는 재료들도 훨씬 싸고 말이야.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이것들만 잔뜩 사다가 코끼리처럼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 



난 여행 중에 현지 슈퍼마켓 구경하는 걸 정말 좋아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의 전통 시장을 좋아하잖아. 그런데 슈퍼마켓에는 전통 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슈퍼마켓 나름의 특별한 재미가 있다? 


방금 흙에서 뽑아낸 듯한 채소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시장 상인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만, 내가 감격했던 이 샐러드 코너처럼 상품의 포장, 구성, 진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거든. 한국에 있는 물건은 한국의 것들과 비교하는 재미, 한국에 없는 건 '이게 뭘까?' 추측하며 탐구하는 재미도 슈퍼마켓 구경의 핵심 포인트지. 

 

내가 샐러드 코너에 심취해 있는 와중에 엄마는 처음 보는 식재료를 겁도 없이 덥석 덥석 집어서 바구니에 넣고 있어. 엄마는 참 신기해. 엄마는 궁금한 게 있으면 한참을 뜯어보다가 어느 순간 결심한 표정으로 그걸 사. 내가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면 일단 사라고. 그래서 먹어보고, 맛없으면 버리라고 말하며 내 손에 있는 물건을 빼앗아 장바구니로 휙 던져 넣지. (그렇게 산 생 햄은 너무 비려서 몇 개 못 먹고 결국 버렸어...)



엄마는 이곳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도전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익숙한 곳에서는 익숙한 선택만 해왔던 엄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나 봐. 그게 여행의 힘이겠지? 


나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오늘 알버트 하인에서의 엄마처럼 리스크 테이킹을 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해. 엄마도 오늘의 자신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용감한 도전을 함께 해줘.  


누군가는 '새로운 햄을 사는 게 무슨 용감한 도전까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오랜 좌우명이 '소소한 일상이 모험인 삶'이라고 말해줘야겠어. 그래서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도 가슴 떨리는 도전이고, 신나는 모험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내겐 그걸 곁에서 같이 해주는 멋진 엄마가 있다고 조금 자랑도 해볼까 봐. 후훗. 



아참, 그리고 우리의 '감초 젤리 모험'은 엄마가 승자야.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검디 검은색의 감초 젤리가 신기해서 사 먹었다가 내 미각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는데, 엄마는 맛있다고 계속 먹고 있네. 


아 잠깐만, 그거 먹으면서 나한테 말하지 마. 

아아 냄새 너무 이상해.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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