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대한 반성과 고찰
놀이를 연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SNS를 통한 놀이 정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SNS 속 놀이들은 화려하다.
가령,
식용색소로 색을 입혀 쌀, 물, 얼음, 반죽 등 놀이 재료들은 모두 알록달록하다.
물질을 혼합시켜 순간적인 놀라움을 자아낸다.
다양한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오늘 우리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까?"
"뭐하고 놀지?"
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화려함을 앞세운 SNS 속 놀이들은 아이의 발달단계, 관심, 흥미는 고려하지 않은 재료들을 사게 하고, 맥락 없는 일회성 놀이를 하게 만든다.
과학 실험 중 하나인데, 베이킹 소다에 구연산 혹은 식초를 넣어 이때 생기는 거품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모습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아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이 놀이가 진짜 놀이가 되기 위해서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사전 지식. 아이가 화산에 대해 알고 있고, 화산에서 나오는 용암의 모습을 사진 또는 영상으로 살펴보았다. 아이가 용암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이때 아이와 화산 폭발 실험을 한다면, 이 실험을 통해 아이는 놀이의 재미를 느낄 뿐 아니라 가지고 있던 지식이 보다 견고해진다.
'화산이 폭발하면 이런 모습일까?', '이렇게 화산이 폭발할 수 있겠다' ,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많이 올라오는구나'등 화산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 튼튼해지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지식으로의 확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을 섞으면 왜 거품이 올라올까?', '화산 폭발을 다른 방법으로 할 수도 있을까?' 등 궁금증을 가지고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신기한 걸 보여줄게~같이 해보자"
"재미있는 거 가지고 왔는데 같이 해볼래?"
로 시작하는 놀이는 어떨까?
아이가 화산에 대해 알지 못하고, 폭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화산 실험 관련 재료들을 펼쳐놓고 시작한다면, 아이는 순간적인 호기심과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에 "우와"하며 감탄을 할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인 호기심과 감탄. 이것이 전부이다.
물론 이렇게 출발한 놀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 지식과 관심을 배제하고 시작한 놀이는 '한번'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어린 연령의 영아를 대상으로 두 가지 물질의 혼합을 활용한 놀이를 하는 건 어떨까?
베이킹소다가 무엇인지, 식초가 무엇인지 재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두 물질의 성질을 활용해 거품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순간적인 재미만 줄 뿐이다.
두 재료의 혼합을 활용한 놀이를 하고자 한다면, 한 가지 재료를 충분히 탐색해보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가령 베이킹소다는 베이킹소다 탐색 놀이를 먼저 한다.
베이킹 소다를 놀이 트레이에 넣고,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져본다. 그릇에도 담아보고 쏟아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베이킹소다를 탐색해본 뒤 다른 날에는 베이킹 소다에 물을 섞어 만져보며 놀 수도 있다.
식초의 경우는 직접 만져보며 탐색하는 놀이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때는 식초를 양념통이나 컵 등에 조금 담고, 냄새를 맡아볼 수 있도록 한다. 식초의 특징인 시큼한 냄새를 아이들과 함께 맡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 더 성장했을 때, 즉 여러 물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생겼을 때 물질의 혼합을 활용한 놀이를 해보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즉, 놀이에도 아이의 발달단계는 고려되어야 한다.
얼음을 얼릴 때 식용색소를 넣어 색 얼음을 만들거나 얼음 속에 무언가를 넣어 얼린 뒤 그 얼음 속 물건을 꺼내 보는 놀이가 요즘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로 많이 등장한다.
알록달록 색깔 얼음 속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 얼음을 깨거나 녹여 그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낸다. 아이들은 재미있다. 그러나 얼음 속에 있던 무언가를 찾아 꺼내면 그 놀이는 끝난다.
이 놀이를 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흥미를 고려한 놀이로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색 얼음이 아닌 투명한 얼음. 그 자체로 놀이하는 시간이 먼저여야 한다.
더운 여름, 우리는 음료에 얼음을 넣어 마신다. 아이들은 얼음을 보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여름의 계절에 자연스럽게 얼음을 본 아이들과 얼음 탐색 놀이를 해본다.
트레이에 얼음을 가득 넣고, 만져보고 굴려보고 맛보고 냄새 맡아보는 등 자유롭게 논다.
유아들과 얼음 탐색놀이를 한다면 얼음에 놀이 자료 몇 가지를 추가해 좀 더 다양한 놀이를 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트레이 위에 얼음을 올려두고 트레이를 움직이며 얼음 이동시켜보기, 얼음 옮기며 수세기, 음료에 직접 얼음 넣어 시원한 음료 만들기, 얼음 쌓아보기, 얼음으로 다양한 모양 만들기 등.
이렇게 놀이하다 보면
유아들과는
'얼음에는 왜 색이 없을까?'
'색이 있는 얼음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의 궁금증을 바탕으로 색 얼음 만들기 놀이로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전개될 수 있다.
오렌지 주스, 포도 주스 등 색이 있는 주스를 얼려 색 얼음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식용색소, 혹은 물감을 넣을 수도 있다. 아이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해 색 얼음을 만들어 본다면, 성인이 만들어서 제공한 색 얼음보다 색 얼음 놀이에 몰입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색 얼음을 얼릴 때 막대를 꽂아 함께 얼려 이 막대를 잡고 그림을 그려보는 놀이도 있다.
"얼음으로 그림 그려보자~"하며 아이에게 제공한다.
아이가 막대를 잡고 움직이며 색 얼음 그림을 그린다.
어린 영아는 왜 이 막대를 잡고 움직였을 때 물이 나오고 색 그림이 그려지는지 알지 못한다.
'색 얼음 막대로 그림 그리기'라는 놀이의 목적을 가지고 처음 얼음을 접한 영아는 얼음의 특성도 성질도 오감으로 탐색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종이에 그려지는 색깔 물을 신기해할 뿐이다.
반면 얼음에 대한 사전 지식이 충분한 아이들과는 색 얼음 막대 그림 그리기가 보다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에 무언가를 넣어 색을 낼 수 있음을 알게 된 아이들. 그 이후엔 또 다른 무언가를 함께 넣어 얼려볼 수도 있다.
얼음틀에 크기에 맞춰 작은 솜공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더 큰 동물 피겨나 블록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얼려보고 이후에 다양한 방법으로 얼음을 깨 보거나 녹여 얼음 속에 넣은 무언가를 빼보는 놀이를 한다.
얼음을 깨 볼 수 있는 안전망치를 먼저 제공하는 것보다
"햇빛에 두자", "바람을 불어보자"라고 제안하는 것보다
아이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숨긴 얼음 속 물건을 빨리 꺼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얼음이 빨리 녹을까?"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고, 아이와 함께 방법을 찾아본다.
이러한 놀이는 아이의 호기심을 키우고, 생각의 힘을 기르고, 몰입하며 빠져들게 한다.
색깔 얼음으로 알록달록한 얼음 그림을 그리는 화려한 모습, 얼음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흥미로워 보이는 모습 등의 놀이 영상과 사진을 보고 '와 이 놀이해봐야지', '이 놀이 재미있겠다'하고 성급하게 놀이 재료들을 구입하지는 않길 바란다.
추가적으로, SNS 속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결과물을 낸다. 또한, 그림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신체놀이, 역할놀이, 음률 놀이 등 놀이는 다양하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와 독후활동도 영역별로 다양하게 혹은 통합적으로 할 수 있다. 결과물이 있어야만 좋은 놀이,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다.
화려한 단편적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놀이,
아이의 연령과 발달단계를 고려한 놀이,
아이와 함께 이끌어가는 놀이이다.
SNS에 등장하는 놀이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영상을 통해 쉽게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 요즘 시대에 보여주기 식의 화려한 놀이 방법과 놀이 소개는 사람을 쉽게 홀리고 만다.
'놀이 영상 속 재료를 다 사야 하는 걸까?'
'단순한 놀이는 놀이가 아닌 걸까?'
부모이기에 내 아이가 즐거울 수 있는 놀이를 함께해주고, 다양하고 예쁜 놀이자료들도 준비해주고 싶다.
하지만 보여주기 식 놀이에 속지 않고, '나는 저렇게 해줄 수 없는데' 하고 자책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다.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성향은 다르다.
아이들이 진짜 즐거워하는 놀이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오늘 하고, 내일 또 하고, 그다음 날에도 하고 싶어 하며 할 수 있는 놀이이다.
알록달록함 보다 중요한 것은 흑백 위에서도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웃음이다.